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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미스테리
[괴담/Reddit] 시애틀 근교 캠핑장에서의 조우
  • 리자
  • 2016.08.03 16:25:15
  • 조회 수: 205

 

 

 

 

한번은 죽을 때까지 일만 하다간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생애 처음으로 장기휴가를 내고 여행을 떠났어요. 

 

여기저기 때워서 고친 야마하 바이크를 타고, 근거도 없는 무한 긍정의 힘을 빌어 서부로 떠났죠. 

 

그리고 거기서 제가 아직 세상에 대해 뭘 모른다는 교훈을 얻었고요.

 

 

 

 

시애틀에 도착했을 때까진 다 좋았어요. 

 

히피의 본고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도시였고,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의 사시사철 축제 분위기인 떠들썩함도 환상적이었죠. 

 

그리고 다리 밑 트롤(시애틀에 실존하는 콘크리트 조각상)도 멋졌답니다. 

 

시애틀이란 도시에선 다리 밑에 트롤 하나씩은 키워야 된다는 주장을 온몸으로 하는 듯 했거든요.

 

 

 

 

근데 시애틀에서 빠져나오는 건 완전 막장이었어요. 

 

시속 60km짜리 국도에서 길은 어찌나 복잡한지 계속 헤매이기만 했죠. 

 

주유소를 몇 군데나 들러서 길을 물었는지 몰라요. 

 

결국 사전에 알아두었던 캠핑 장소에 도착했을 땐 몇 시간이나 지체된 후였고요.

 

 

 

 

시애틀 남동쪽으로 수 킬로미터를 가면 무료 캠핑장이 나와요. 

 

보통은 말을 타는 기수들이 사용하는 장소라서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죠. 

 

사실, 거기까지 찾아가는 길은 포장도로도 아닌 구불구불한 자갈길인 데다, 

 

표지판이 죄다 부러지거나 희미해져서 거의 냄새로 찾아가야 했답니다.

 

 

 

 

캠핑장에 도달해서 석양빛을 받으며 걸스카웃 때 마련했던 텐트를 쳤어요. 

 

텐트는 하나밖에 없었는데, 캠핑장에 묵는 사람은 저 뿐이었기 때문이죠. 

 

지난번 캠핑장에서 몇 개 슬쩍해온 사과로 대충 요기를 한 후에, 

 

잠자리에 들기 전 마지막 준비를 했어요. 캠코터를 텐트 밖에다 녹화시켜놓고 랜턴을 켜둔 거죠. 

 

이번 여행에서 계속 해왔던 기록 놀이랍니다.

 

 

 

 

얼마나 오래 잠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뭔가가 제 단잠을 방해했어요. 

 

시간을 확인했던 것 같지만 그게 기억날 리가 없죠. 

 

전 비몽사몽간에 앉아 있었는데, 뭔가 괴상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완전히 일어나기엔 너무 졸렸지만 그렇다고 다시 잠들기엔 묘한 경계심이 들었어요. 그

 

때 뭔가가 제 텐트 측면에 긁혔고, 전 갑자기 제 인생 최대로 정신이 명료한 상태가 되었죠.

 

 

 

 

그때까지 여행을 하면서 캠핑으로 밤을 보낸 적이 꽤나 많았고, 

 

밤마다 텐트 주변에 찾아올 수 있는 라쿤이나 코요테 같은 짐승들엔 익숙했어요. 

 

그놈들은 절대 제 텐트 안에 들어오지 않았죠. 

 

그냥 주변을 서성거리며 냄새를 맡다가 가버리곤 했어요. 

 

그런데 지금 제 텐트 밖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간에 두 발로 걸었어요. 

 

그런 일은 처음이었죠. 

 

전 최악의 상황을 떠올렸어요. 

 

곰이 나타났다던가.

 

 

 

 

야생에서 곰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수많은 방책이 있지만, 

 

대부분 그 곰이 어떤 종이냐에 따라 달라요. 

 

그런데 그 어두운 텐트 속에서 저 밖에 있는 곰이 대체 무슨 종인지 알 수 있을리가요.

 

소리를 질러서 놀래켜야 할까요? 아니면 죽은 척을 해야 할까요.

 

 

 

 

제 텐트에서 30미터쯤 거리에 시멘트로 만든 화장실이 있었어요. 

 

텐트보다는 거기가 훨씬 안전할 터. 전 가능한 조심스럽게 장화를 신고, 달려나갈 준비를 했어요. 

 

텐트 입구의 지퍼를 찔끔찔끔 여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천둥소리 같던지. 

 

정말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게 움직여야 했답니다.

 

 

 

 

텐트 밖으로 머리를 빼꼼 내밀고 곰이(만약 그게 곰이었다면 말이지만) 

 

화장실과 텐트 사이에 있는지 확인했어요. 

 

하늘을 수놓은 은하수에서 쏟아지는 별빛 덕에 캠핑장이 훤히 보였죠. 

 

캠핑장이 있는 공터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런데 뭔가가 절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조그마한 벌레가 목 뒤를 기어오르는 느낌? 

 

절 감시하는 게 무엇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저 어두운 숲속에 뭔가 있고, 

 

전 오밤중에 홀로 캠핑장에 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죠.

 

 

 

 

온몸에 털이 쭈뼛 곤두선 채로 텐트 밖으로 기어나왔어요. 

 

자갈밭이라 소리를 내지 않게 조심해야 했죠. 

 

여전히 화장실이 제일 안전한 장소로 판단됐어요. 

 

화장실 문틈에 돌을 하나 끼워서 닫히지 않게 해놨고, 안쪽에서 걸쇠로 잠글 수 있게 되어 있었죠. 

 

거기 들어가면 말똥냄새 나는 들판 한가운데 인분 냄새 나는 화장실에서 밤을 새야 하겠지만, 곰한테 습격당하는 것보단 나을 테죠.

 

 

 

 

제가 화장실 문 손잡이를 딱 잡았을 때, 등뒤에서 난데없이 자갈 위를 걷는 밟소리가 들려왔어요. 

 

전 생각할 틈도 없이 문을 받치고 있던 돌을 차버리고 들어가서는, 육중한 철문을 쾅 닫았죠. 

 

얼마나 큰 소리가 나건 상관없었어요. 밖에 있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엄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죠. 

 

뭔가 문 손잡이를 덜컥 부여잡더니,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거든요. 

 

전 계속 걸쇠를 제자리에 집어넣으려고 시도했고, 간발의 차이로 성공했어요.

 

 

 

 

화장실 천장엔 금속망이 달려서 환기구 역할을 했는데, 거기서 제가 내는 것과 비슷한 힘겨운 숨소리를 들었어요. 

 

그리고 전 참 영리하게도 핸드폰을 텐트에 두고 왔죠. 

 

그래서 시간을 도저히 알 수 없었고, 제가 화장실까지 달려오게 만든 멍청한 충동이 다시 일어서 입을 열고야 말았어요.

 

 

 

 

"저기요?

 

 

 

 

정적. 밖에선 절 못 들었던 걸까요. 그런데 밖에서,

 

"저기요?"

 

 

 

 

그 자리에서 지릴 뻔 했죠. 

 

뭐, 그래도 최소한 화장실 안이었잖아요. 

 

밖에서 들린 건 저처럼 여자 목소리였고, 그 목소리를 듣자니 뱃속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어요. 

 

왜 그렇게 그 목소리가 이상했는지 알 수 없었죠. 

 

말하자면, 계단을 걸어올라가다가 한 단이 더 있는 줄 알았는데 발은 허공을 밟았을 때의 그 느낌이랄까.

 

 

 

 

"죄송해요. 저 혼자인 줄 알았어요."

 

"저 혼자에요."

 

 

 

 

뭔가 어긋나는 느낌.

 

 

 

 

"제가 너무 놀라서 죄송해요. 여기 저만 있는 줄 알았거든요."

 

"죄송해요. 저 있는 줄 알았거든요."

 

 

 

 

이쯤 되면 다른 캠퍼인 줄 알고 화장실 문을 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뭔가 마음 속 깊은 곳의 본능이 걸쇠에서 제 손을 떼어내는 걸 가로막았죠.

 

"사실 그쪽 때문에 좀 많이 놀랐어요. 숲에 다른 캠핑장이나 텐트 같은 게 더 있어요?"

 

"저 같은 게요. 더 있어요."

 

그녀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소름돋았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랬어요. 

 

그 이상한 통사법을 듣자니 영어가 그녀의 모국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혹시 다른 데 가주실 수 있나요? 화장실 말이에요. 여기 제가 좀 써야 되거든요." 

 

최소한 거짓말은 아니었어요. 문 밖에 있는 게 우리 엄마라도 문을 안 열었을 거니까요.

 

 

 

 

"그쪽이 가주실 수 있나요?"

 

그녀의 영어 구사 능력이 한마디 할 때마다 더 나아지는 느낌이었는데, 뭔가 기묘했죠.

 

 

 

 

"저기, 혹시 제가 그쪽을 놀래켰다면 미안해요. 하지만 그쪽이 먼저 어두운 데서 튀어나왔잖아요. 

 

전 안 나갈 거에요. 다른 화장실 찾아보세요. 해뜨면 바로 사라질게요. 약속해요. 그냥 조용히 잠만 자고 가려고 했단 말이에요."

 

 

 

 

"그쪽이 나갈 거에요. 전 어두운 데서 튀어나올게요. 약속해요. 그쪽은 해뜨면 사라질 거에요."

 

그쯤 되자 전 공포에 말문이 막혔어요. 

 

제가 말을 더 할수록, 저것도 더 말을 했고, 그 목소리를 더는 듣고 싶지 않았죠. 

 

그냥 망상일 수도 있지만 제가 그것에게 할 말을 먹여준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절대 좋은 기분은 아니었어요. 저것은 제가 말하는 걸 원하는 듯 했으니까요.

 

 

 

 

제 입을 다물게 했던 그 본능적인 공포 때문에 그 후로도 입을 열 생각은 하지도 못했어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거나, 뭔가 아예 이질적인 존재와 대화하는 것일 수도 있었죠. 

 

그녀의 단어 선택이나 말하는 방식엔 알 수 없는 위협이 느껴졌고, 

 

전 그녀가 그 위협을 실행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전 계속 걸쇠를 걸어둔 채로 붙들고 있었고, 드디어 동이 트며 화장실 천장의 철망을 통해 햇빛이 새어들었어요. 

 

해가 높이 떠서 제가 스스로를 가둔 감옥 안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릴 때가 되어서야 

 

전 다시 말을 할 용기(혹은 어리석음)를 낼 수 있었죠.

 

 

 

 

"저기요? 아직 밖에 계세요? 아무도 없어요?"

 

아무 대답도 없었고, 그건 바로 제가 바라던 최고의 반응이었어요. 

 

그래서 전 문을 열었죠. 제 텐트는 멀리서 보기엔 멀쩡했고, 감시당하는 듯한 주눅드는 느낌은 사라졌어요. 

 

전 사상 최단시간 내에 옷을 입고 텐트를 정리했죠. 

 

바이크에 시동을 걸고 헬멧을 쓰려던 순간에야 전 그 발자국을 봤어요.

 

 

 

 

바닥에 놓아둔 헬멧을 쓰려고 집어들 때, 자갈 하나를 발로 툭 찼고, 

 

그것이 떨어진 진흙 바닥에 발자국 하나가 나 있었어요. 

 

사람은 절대 아니었고, 편자를 씌우지 않은 말이나 염소 같은 발굽 자국이었죠. 

 

너무나 선명하고 너무나 새것이었어요. 

 

지난밤 잠자리에 들기 전 화장실에 갔을 땐 그런 분명 그런 발자국이 없었는데 말이죠. 

 

이제 보니 화장실 앞의 부드러운 진흙 바닥에 그런 발자국이 더 많았어요. 몇 개는 제 장화 발자국 위를 덮고 있었죠.

 

 

 

만약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고, 직접 알아보고 싶다면 얼마든지 해보세요. 

 

다만 한가지, 말하는 것을 조심하세요. 나중에 제 텐트 근처에 녹화를 켜둔 캠코더를 재생해보고, 

 

왜 그 목소리가 그렇게 소름끼쳤는지 깨달았거든요.

 

그건 바로 제 자신의 목소리였어요.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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