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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미스테리
[괴담] 당신은 필연을 믿나요?
  • 리자
  • 2016.10.07 00:20:27
  • 조회 수: 118

 

 

 

 

안녕하세요. 전 오래된 물건을 중개하거나 직접 물건을 사서 되파는, 이른바 고미술상 같은 사람입니다. 오컬트 같은 것에는 특별히 관심은 없습니다만 직업 특성상 그런쪽 사람을 가끔 만나는 편입니다.  오래된 물건에 뭔가가 깃들어 있다고 해서 납품하기 전에는 꼭 제를 올리고 나서 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뭐 대부분 워낙 고가의 물건이다 보니 그런 것 하나하나 신경써가면서 사는 것도 소위 스마트 컨슈머의 범주에 들어갈 지도 모르겠습니다. 있을 리 없는 것을 달래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스마트 컨슈머. 얼핏 듣기에는 논리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원체 비싼 것들이니까요. 조금이라도 더 안심하고 살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 오컬트같은건 믿지 않는 편입니다. 그래도 고객분들께서 원하신 제령이니 씻김이니 하는 걸 맡는 사람은 절대 대충 고르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아시나요? 영능력자니 무속인이니 하는 사람들도 자기 전문분야가 있습니다. 사람에 붙은 귀신 전문, 물건에 붙은 귀신 전문이라던지요. 개중에도 사람이 그려진 그림, 동물형태의 조각, 소위 말하는 저주받은 물건 등등 다 나열할 수도 없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전 그 중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들을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조사해본 뒤 엄선합니다. 말 그대로 스페셜리스트들을 말이죠. 

 

그렇지만 저런 사람들은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달까...좀 가까이 하기 싫더군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제 입장에서는 사업적 조력자일 뿐, 그게 아니라면 단순한 사기꾼이니까요. 업무적으로는 종종 만나지만 그 외에 연락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그 중에 딱 한사람만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오늘 하려던 게 바로 이 사람에 대한 얘기입니다. 

 

이 사람의 전문분야는 딱 한가지입니다. 사기꾼. 그러면 다른 무속인이니 영능력자들(기니까 앞으로는 능력자로 적겠습니다)과 다를 바 없지 않냐고 생각하시겠지만 그게 그렇지도 않습니다. 일단 정말 능력이 없습니다. 어째서 이 사람이 제 능력자 리스트에 걸렸는지부터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유명한것도 아니고 평판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완이나 말재주가 좋은 것도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한테 일을 맡기도록 끌어들이는 마력도 없었습니다. 이런 쪽에는 문외한인 제가 한눈에 보기에도 그는 말 그대로 사짜였습니다. 그 덕이었을까요. 그와 저는 묘한 우정을 쌓아갈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제가 그를 부르는 별명은 사짜였지요. 

 

사짜의 사업적 말솜씨는 별로라고 했지만 개인적으로 만난 사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 외적으로 만난 사짜는 꽤 재미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차피 사짜가 얘기하는 오컬트적인 얘기는 다 거짓말인게 뻔한데다 장사안되는 능력자의 오컬트 얘기다 보니 사기로도 보이지 않고 단순한 허풍으로만 여기게 되니까요. 거기다 꽤 친해진 뒤에 들은 얘깁니다만 사짜 스스로도 자기 능력이 보잘 것 없는 거라고 실토하더군요. 

 

- 야, 나같은 사짜도 말이다. 어? 능력이 전혀 없는건 아니라고. 아니면 무속인 타이틀 달고 살겠냐? 다 이것도 가끔 그분이 오시니까 가능한거라고. 딱 안굶어죽을 만큼. 알겠냐? 

 

-웃기고 있네. 사짜가 사짜다운 소리를 해야지 크크크크. 가끔 그분이 오시는게 아니고 호구가 오시는거겠지. 하기야 너 안굶어 죽는 것도 신기하긴 하다. 

 

-와 이게 또 사람 무시하네. 야. 너 아카식 레코드라고 들어는 봤냐? 그런게 지금 내 눈앞에 이게 쫘아아아악 펼쳐져 있다고. 니가 태어나서 어? 죽을때까지 모든게 여기 적혀 있다니까? 근데 이 형님이 그걸 입밖에 내는 순간 일어나야 할 일이 막 꼬일 수도 있다고. 그분이 가끔. 아아아주 가아아끔 이거는 얘기해줘야해요 용사님. 이럴때만 얘기해주는거거든 이게. 아오 진짜 근질근질하네. 

 

사짜의 지론인 즉, 세상에 우연이란 말은 있어도 존재한 적은 없다. 모든건 필연이라는 게 사짜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입니다. 나중에 보니까 이거 어딘가의 만화에서 나온 대사더군요. 

 

-니가 나를 만난 거, 나랑 친해진 것까지 전부 필연이었다 이거야. 그리고 오늘 내가 지갑이 없어서 이거 니가 사는 것까지 모조리 필연이다. 

 

-사기꾼 새끼. 

 

항상 이런 식이었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긴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는 금전적으로 부족한 입장이 아니라 주로 이렇게 제가 밥이나 술을 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짜의 표정이 너무나 어두웠습니다. 입을 떼려고 하지 않는 사짜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고 비싼 술도 사줘가면서 기분을 풀어주려고 했지만 하루 종일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그야말로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일관하더군요. 술만 퍼마시던 사짜는 결굳 바닥에 엎어졌습니다. 그리곤 일어날 생각도 않고 엉엉 울었습니다. 너무나 서럽게. 

 

-어어어어엉. 흑. 어허헝. 야 어떡하냐... 죽는단다. 어흐흐흐윽. 죽는다고! 

 

-무슨 일인데?  어디 아파? 병원에서 뭐라고 해? 

 

도리도리. 

 

-그러면 뭐? 그분이 따라오라셔? 

 

끄덕끄덕. 

 

-야 씨. 말같지도 않은 소리.  그럼 뭐? 전에 니가 그랬잖아. 그런건 입밖에 꺼내면 틀어진다며? 그럼 이제 안죽는거 아냐? 

 

-병신아. 그러면 뭐 죽을 때 다 돼서 아 나 죽는다. 죽습니다. 하면 살아나냐? 죽을 때는 다 죽게 되는거야. 무슨 수를 써도 안돼. 죽는건 이미 정해진거야! 

 

그러고는 또 한참을 울었습니다. 오래도록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짜를 업고 일단 제 방으로 왔습니다. 대강 침대에 눕혀두고 전 거실로 나왔습니다. 

 

-한 달... 한달....지금까지 고마웠다 새끼야... 

 

혼잣말인지 잠꼬대인지를 반복하는 사짜의 목소리는 이내 잦아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사나흘에 한번 꼴로 사짜를 만났습니다. 걱정도 됐거니와 혼자 두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요. 사짜의 사무실(저는 이렇게 불렀습니다)은 이후로 항상 비워둔 상태였고 저도 최소한의 의뢰만 받아가면서 사짜와 시간을 보내줬습니다. 날이 갈수록 사짜의 얼굴도 조금씩 밝아졌고 죽는다는 얘기도 안하게 됐고요. 

 

그날도 저희는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날까지 괜찮던 사짜의 표정이 또다시 어두워져 있더군요. 

 

-야, 내가 전에 얘기했던 거...오늘이다. 지금까지 고마웠다. 오늘은 내가 살게. 

 

-얘가 또 갑자기 미쳤나. 이제 그런 소리 그만 해라. 그래. 그러면 내가 니 대신 죽어줄게. 일단 술은 다 마시고 혹시 죽을 타이밍 오면 말해. 

 

사짜는 말없이 싱긋 웃더니 손에 들고 있던 잔을 털어넣었습니다. 그리곤 고개를 푹 숙이더니 말이 없더군요. 어깨가 간혹 들썩이는 걸 보니 우는 것 같았습니다. 

 

자리를 마친 저희 둘은 말없이 걸었습니다. 사짜가 인도 바깥에서, 제가 인도 안쪽에서요. 너무 무거운 분위기에 제가 먼저 말을 꺼내려던 찰나 사짜가 입을 열었습니다. 

 

-야. 니가 길 바깥으로 걸어라. 

 

-오오 이새끼. 죽는다더니 이제 몸 사리냐? 크크크큭. 암만 그래도 니가 내 여자친구냐? 지만 안전하려고 수쓰는거 봐라 이거. 

 

또 사짜는 아까처럼 빙긋이 웃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바꿨죠. 얼마나 더 걸었을까요? 트럭 한대가 오는게 보였습니다. 멀리서 빠르게 가까워지는게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습니다. 그런데 방향이 이상합니다. 차도에서 달려야 할 트럭이 묘하게 제 쪽으로 오는 것 같습니다. 술 때문이었을까요. 피해야 하는데 생각은 했지만 눈부신 헤드라이트에 앞이 보이지 않고 몸이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순간 전 죽음을 직감했죠. 아. 영화에서 보면 피하면 되는데 꼭 안피하고 죽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바보들이라 못피한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죠. 순간 옆에서 사짜가 저를 강하게 당겼습니다. 너무 힘이 세서 저도 나동그라지고 사짜도 저를 당기다가 두어바퀴 구르더군요.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트럭은 저를 스쳐지나 건물을 들이받았습니다. 반사적으로 바라본 사짜는 무사했습니다. 그리고 웃으며 저한테 가볍게 손을 흔들었죠. 

 

 

 

콰작!! 

 

 

트럭이 건물을 들이받은 충격이었을까요. 고층에 매달려있던 간판이 사짜를 덮쳤습니다. 너무 혐오스러운 묘사는 피하는건 좋겠지만 사짜의 몸은 간판에 깔려 납작해져 있었고 목만 덩그러니 구르고 있었습니다. 눈물도 비명도 없이 저는 조용히 정신을 잃었습니다. 

 

 

깨어난 저는 머리가 너무 복잡했습니다. 일단 사짜가 죽은 건 변하지 않을 사실이고 음주운전에 졸음운전까지 한 트럭 기사를 봐도 분노조차 일지 않았습니다. 충격이 너무 컸던 나머지 사짜의 죽음은 필연이었다, 날 살리려고 하다가 죽은게 아니고 그냥 원래 사짜가 그날 죽을 운명이었다 합리화를 하려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죽을거라고 얘기하던 사짜는 한 줌 재가 됐고, 연고도 없던 그를 어딘가의 산에 뿌려줬습니다. 

 

이후 몇 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때 일을 좀 더 침착하게 생각해 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모를 일 뿐입니다. 만약 정말로 사짜 스스로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알았다면 아무리 필연이라도 피할 수 있어야 하는게 아니었을까요. 희미하게 웃으며 살짝 손을 흔들던 모습은 대체 뭐였을까요? 

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당연히 그건 우연이었을겁니다. 몇가지 우연이 겹친 비극적 우연.  우연 한두가지가 겹쳐 일어나는건 여러분들께도 그리 드문 일은 아니겠죠? 글을 적을 수록 또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게 다 사짜가 자주 하던 말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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