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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미스테리 [괴담] 죽음

리자 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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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하는 새처럼 절벽 공중에 띄어져 있는 자동차는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은 금방일 것이다. 

 

그 차에 타고 있는 나도 그렇고. 

 

그런데 곧 죽겠지라고 체념한 순간 무언가가 내 눈앞에서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영화처럼 한 필름 한 필름씩 끊어서 보여주기도 하고, 이어서 보여 주기도 했다. 

 

죽을 때가 되면 살면서 겪었던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했나?

 

만약 사실이라면 지금의 상황이 그것이리라.

 

내 인생의 영화는 내가 기억하지 못한 일들까지 모두 보여주고 있었다. 게임 엔딩을 보는 것처럼 후련한 느낌이었다. 

 

왜? 그건 나도 모르겠다. 단지, 내 감정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죽을 때가 됐는데도, 전혀 두렵지 않다. 내 몸속에 엔돌핀이 과다 분비되서 그런 것일까?

 

머릿속에서 분비되는 엔돌핀이 내 전신을 훑어 이렇게 기분이 좋으리라.

 

아아……. 어렸을 적의 일을 보여준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15살 때였다. 당시 나는 외소한 체격의 중학생이었다. 

 

공부는 그럭저럭 했고, 운동도 그럭저럭했다. 모든 게 평범한 일상이었고, 그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정확하게 날짜를 언제쯤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아마 12월쯤 되었으리라. 

 

병상에 누워계신 어머니를 뵙기 위해 목도리까지 하고 추위에 벌벌 떨며 찾아갔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병원에 도착하면 어머니는 항상 아무말이 없으셨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식물인간 상태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버지라도 있었더라면 그렇게 힘들진 않았을텐데……. 

 

아버지는 내가 8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러나 2억 가까이 되는 막대한 보험금을 남기고 돌아가셔서 다행히 생활은 유지되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10살 때 어머니가 아파트에서 떨어져 식물인간되셨던 것이 그 생활을 파탄시킨 이유였다.

 

그 이후로, 아버지의 보험금은 모두 어머니의 치료비가 되었다. 

 

약은 필요 없었다. 그냥 생명 유지기 하나만 달고 병상에 누워계시면 되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돈이 아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머니마저 내 곁에 없으면 난 자살해버렸을 수도 있었다. 

 

한 가정 몰살보다는, 아버지가 없고 어머니는 식물인간인 어려운 가정이 훨씬 낫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무튼, 부모님 모두 날 돌봐주실 수 없게되자 나는 할머니 손에 맡아 키워졌다. 

 

할머니는 당뇨병에 걸리셔서 거동이 불편하셨는데도 날 열심히 키워주셨다. 정말 눈물겨울 정도로 힘드셨겠지. 

 

 

"어머니." 눈물을 머금고 어머니를 불렀다. 그 상황에 왜 눈물이 났을까.

 

어머니가 네모난 병원침대에 꼴랑 생명 유지기 하나 달고 누워계시는 모습이 처량해 보여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이렇게 사는 우리를 세상이 외면해버려서 그런 것일까? 

 

"어머니." 다시 한번 불렀다. 역시 대답이 없었다. 

 

한번쯤이라도 대답을 해주시면 좋으련만 역시나 그런 일은 없었다.

 

어머니는 매우 평화로운 표정이셨다. 좋은 꿈이라도 꾸고 계실까? 그렇다면 좋으련만……. 

 

- 삐 삐 - 심박측정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어머니의 심박수는 낮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황해했다. 

 

이대로 방치해두면 곧 어머니가 죽을 것이다! 살려야 한다. 어서!

 

"의사! 의사! 누가 좀 와봐요! 어머니가 죽으려고 해요! 누가 좀 와주세요!" 난 병원 복도를 뛰어다니면서 그렇게 외쳤다.

 

병원 내의 사람들은 내 목소리에 이끌려 다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갑자기 왜 그러는거야? 우리가 이제 돈이 없어서? 하찮아서? 그래서 우리 엄마따윈 죽어버려도 되는 거야? 개새끼들.

 

사람들의 무관심에 큰 분노감을 느끼면서도 소리치는 것은 멈출 수 없었다. 

 

어머니를 살려야 했다.

 

"왜 그러세요?" 한 간호사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상황에서 나긋나긋하다니……. 허탈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려고 해요. 도와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제야 간호사의 목소리도 다급해졌다. 

 

잠시 후 그 간호사는 의사 여럿을 데리고 왔다. 난 그들을 이끌고 어머니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병실 문을 열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어머니가 침대에 걸터 앉아 계시는 것이었다. 

 

두 발은 병원 바닥에 딛고, 엉덩이는 병원 침대에 붙인 채 이제 막 일어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머니! 깨어나셨군요." 내가 소리쳤지만, 어머니는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벙어리가 되신 걸까?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벙어리라도 상관 없어. 어머니가 깨어나신 것 만으로 나는 만족해.

 

그러나 어머니의 입에서는 뜻밖의 말이 나왔다.

 

"누구세유?" 아아……. 어머니는 기억상실증에 걸리셨던 것이다. 차라리 벙어리인 것이 더 낫다. 

 

나를 기억하고 나를 사랑해주시는 어머니. 그러나 이제는 없다. 내 이름조차 모른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어머니가 깨어나신 것에 대해 잠시동안 놀라워하더니, 헛기침을 몇번 하며 '기억상실증인 것 같은데요? 검사 좀 해봐야 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생소한 환경에 놀라신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그들에게 끌려갔다. 

 

 

 

병원 진단실. 

 

의사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책상 하나 간격을 두고 마주 앉아 있는 나는 그것을 보고 겁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기억상실증만은 아니기를……. 그러나 내 바램은 산산조각 나 듯이 깨져버렸다.

 

"에……. 기억상실증이 확실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신 장애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오신 듯 합니다. 

 

어머님께서 자신의 아들 이름은 '박형진'이라고 합니다만, 김상진씨는 박형진씨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나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어머니께서 절 기억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그렇겠죠.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시면 아주 적은 확률로 나으실 수도 있습니다."

 

"약이요? 가격은 얼마나……." 돈이 없었기에 나는 물었다.

 

"비쌉니다. 게다가 효과가 완벽한 건 아닙니다." 의사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사지 말라는 투로 말했다. 

 

돈도 없는 놈이 비싼 건 뭐하러 사느냐고. 돈도 없고 아직 학생인 나를 깔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어쩌리라. 정말 돈이 없는 것고 정말 나이가 적은 것을.

 

난 말없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진단실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문 앞에서 멍한 얼굴로 서 계셨다.

 

 

집으로 오면서 나는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말씀드렸다.

 

내가 태어났을 때와 재밌었던 일들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일. 그 모든 것들을 말씀드려도 어머니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전 그런거 몰라유. 아무것도 모르겠슈." 구수한 사투리가 섞였지만 존댓말이었다……. 

 

가슴이 미어졌다. 애써 깨어나신 어머니가 이렇다니. 

 

"어머니." 나직이 말했다. 그러나 그것을 못 들으셨는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는 입을 여는가 싶더니,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런 거였어. 그래그래. 진실을 알아야혀." 

 

그리고 어머니는 달려오는 트럭으로 뛰어들으셨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트럭에 몸을 부딫히면 죽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당연히 즉사일 것이다. 어머니 역시 즉사였다. 

 

"왜… 왜!" 나는 오열하며 외쳤다. 

 

그러나 몸이 뭉개지고 피가 줄줄 흐르는 어머니였던 몸뚱아리는 식물인간이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답이 없었다. 

 

 

 

 

"흐흐흐." 왠지 웃음이 나왔다. 

 

기억하고 싶지 않던 옛날 일인데도 지금 상황만큼은 웃음이 나왔다. 

 

아아……. 절벽 끝이 코앞에 있다. 세상아 안녕. 난 죽는다.

 

- 쾅! -

 

 

 

 

눈을 떴다. 이곳은 병원인 듯,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눈을 깜박였다. 빛을 본지 오래인지 눈이 심하게 부셨다. 그 사고에서 살아남은 것일까?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상황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즘, 누군가가 병실 끝 쪽에 있는 문에서 나에게 달려왔다.

 

"여보. 괜찮으세요?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3일 동안 혼수상태였어요." 

 

여보라니. 난 결혼을 한 적도 없고 결혼 할 생각도 없다. 그런데 이 여자는 누구인가. 처음보는 여자였다.

 

"누구…세요." 내가 힘겹게 입을 뗐다. 여자의 얼굴은 충격으로 가득했다. 

 

잠시 후, 의사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이런저런 검사를 했다. 

 

그들은 내가 처음 듣는 생소한 사건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중에서 가관인 것이 내 이름이 '한승준'이란다. 말이 되는 소린가? 

 

 

검사를 마치고 나에게 여보라고 불렀던 여자는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나 모두 생소한 이야기들 뿐이었다. 난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러다가 어떤 생각이 퍼뜩 들었다.

 

 

김상진이었던 삶은 혼수 상태 속의 삶이었다. 그렇다면 이 삶이 진짜일까?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이 삶도 혼수상태나 김상진이었을 때 나의 어머니처럼 식물인간 상태에서 느끼는 삶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느끼고 냄새도 맡을 수 있는데 정말 거짓일까? 

 

아니지. 그런 것들을 단지 뇌에서 보내는 전자신호에 불과하다. 진실을 알아야 한다.

 

 

난 달리는 트럭에 뛰어들었다.

 

진실을 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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