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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미스테리 [괴담] 사람은 모두가 자라면서 변하기 마련이다.

리자 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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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첫사랑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브리아나라는 소녀에게 반해버린건 고작 7살때였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나서야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알았다. 7살짜리 소녀가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깨닫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브리아나는 인디아나에서 조그만 우리 마을로 이사를 왔다. 차로 1시간만 가면 인디아나 였지만,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내게는 알 수 없는 먼 곳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일주일에 최소 한번씩 풋볼 티셔츠를 입고 왔는데, 풋폴팀 상징색 대신 흰색과 분홍색이 섞여있어 어느 팀 셔츠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날 제시카가 아니라 제스라고 불렀다. 우리 부모님 빼고는 누구도 날 제스라고 부르지 않았는데 말이다. 

 

초등학교 2학년의 9달 동안 그녀는 나의 베스트 프렌드였다. 어느 날 그녀가 인디아나로 돌아간다 말했을 때 나의 작은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다. 그리고 그녀가 떠나자 여름이 찾아왔다. 간혹 브리아나를 그리워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잊혀져갔고, 최근까지는 그녀를 떠올린적도 거의 없었다. 

 

몇 달전 엄마 집에 찾아가 내가 옛날에 쓰던 방을 정리하며 혹시 가져갈만한 것은 없는지 살펴보다가 우연히 금광을 발견했다. 초등학교 졸업앨범이었다. 치아 교정기를 낀 채 웃고있는 볼 살이 빵빵한 얼굴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옛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그동안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웃으며 수다나 떨 생각이었다. 제일 끝 페이지에는 브리아나의 사진이 있었다. 그녀를 보자마자 너무도 익숙한 가슴의 통증이 느껴졌고, 15년 전 품었던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페이스북에서 브리아나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성이 특이했던데다 사진을 보니 어릴때 얼굴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나 아름답게 성장한 모습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사진 속 그녀는 환하게 웃고있어 눈가에 주름이 져 있었고, 어릴때처럼 코와 양 볼에 주근깨가 보였다. 친구신청을 하면 좀 이상해 보일까 고민했지만,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내 손가락이 먼저 "친구추가" 버튼을 눌러버렸다.  

 

그녀가 너무도 빨리 친구수락을 한데다 나를 기억한다며 메시지까지 보내주어서 몹시 흥분했다. 시간이 그대로 멈춘 것 같았다. 장성한 여인의 몸에 갇힌 초등학교 2학년생이 된 기분이었다. 헤어진 후 어떻게 지냈는지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가 글쓰기에 매진한 반면, 그녀는 스포츠를 택해 축구 장학생으로 대학에 진학한 상태였다. 우리의 어린시절이 선연히 떠올랐다. 그녀는 모험가였고, 나는 그녀를 관찰하는 조수 역할 이었다. 그녀가 이사간 뒤 내가 어울렸던 아이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지만, 그녀는 몇몇 이름밖에 기억하지 못했다. 브리아나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게되니 너무나도 기뻤다. 대화가 뜸해지자 우리는 나중에 날을 잡기로 하고 이야기를 끝마쳤다. 나는 졸업앨범을 치우고 뿌듯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몇 주뒤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고향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서 열리는 야외 콘서트에 함께 가자는 내용이었다. 

 

" 곧 동네 갈꺼야. 아직 거기 있는거면 만나서 커피라도 마시자!" 

 

우리는 시간과 장소를 정했고, 나는 토요일날 외출할 핑계거리가 생겨 기뻤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공연을 보러 동네까지 온다는게 이상하긴 했지만, 공연하는 사람이랑 아는 사이이겠거니 생각했다. 나는 달력에 일정을 표시하고 약속 전날까지는 그에 관해 생각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내 실수인걸 인정한다. 거대 검색 엔진에 기록으로 남을 만큼 대단한 일을 한 적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데이트 가기 전 상대방의 이름을 검색해 보는 것은 나쁜 습관임이 분명하다. 물론 정식 데이트는 아니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노벨 상 수상자나 사이코 살인마를 만나게 되는 것 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녀의 이름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발견 되었다. 첫번째 검색결과는 "브리아나 톨든을 추모하며"라는 제목의 페이스북 페이지와 연결되어 있었다. 우연의 일치라 생각하며 클릭해보니 페이스북에서 본 그녀의 웃는 사진이 나타났고, 나는 그 즉시 걱정에 휩싸였다. 새 창을 따로 열어 친구추가 된 프로필을 검색해 봤지만 메시지는 삭제 되어 있었고, 추모글 외에 다른 검색 결과는 없었다. 

 

원래 검색결과로 돌아가서 다음 링크를 클릭해 보았다." 2년 수색끝에 인디아나 소녀의 유골발견"이라는 뉴스 기사였다. 브리아나는 15세 생일 즈음 납치 되었고, 발견 당시에는 유골밖에 남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 급하게 쓰레기통을 찾았다. 메스꺼움은 사라졌지만 눈 앞이 핑핑 돌아서 내 바로 앞에 있는 모니터 속 단어조차 읽을 수 없었다. 브리아나를 헤친 누군가가 한참 후 나타나 그녀인 척 하고있다. 누구인지 모를 그 사람은 브리아나를 알고있다. 브리아나가 2학년때 이사를 갔다는 사실, 브리아나의 반 친구들, 그녀의 꿈과 소망까지 다 알고있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잔해를 모두 지워버렸다. 내 메시지함에 남은 그녀의 메시지, 그녀에게 보여 주려고 저장해 둔 사진들, 그녀가 보낸 스크린샷까지 모두 지운 후 캘린더에 표시해 둔 약속일정까지 지우고, 콘서트는 가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브리아나를, 그리고 브리아나인 척 하는 사람을 내 인생에서 지워야만 했다. 

 

그 날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만일 내가 진실을 알아내지 않았더라면 다음 날 아주 무서운 일이 일어났을 터였다. 그 끔찍한 사기꾼과 만날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만으로도 소름이 끼쳤고, 안전을 위해서 집 밖으로는 한발짝도 나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갔지만 난 움직이지 않았다. 맥 없이 침대에 앉아 브리아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그녀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뱃 속이 또 울렁거렸다. 나는 머리 속에 떠오른 이미지들을 지우려고 눈을 꼭 감았다. 

 

약속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5시쯤 되자 부엌까지는 가도 괜찮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투명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애초에 그녀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것 처럼, 조심조심 걷는 내 발밑으로 마루바닥이 삐걱거렸다. 

 

휴대폰을 식탁위에 올려놓고, 먹는 즉시 토하지 않을만한게 뭐가 있을까 찾아보는데 진동음이 들렸다. 

 

" 데이트에 안나오다니 유감이네. 오늘 밤 너희집에 들러도 될까?"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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