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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미스테리 [괴담/장편] 3 VS 1 (上)

리자 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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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작업 중인거 아시잖아요" 

 

"알다마다, 아니까 이렇게 부탁 하는게 아닌가" 

 

"그냥 다른 사람한테 넘겨요, 안 그래도 요즘 진도 못빼서 답답하구만" 

 

"기분전환 한다고 생각해, 안써지는 소설 붙들고 있으면 머리만 빠져 이사람아" 

 

"어쨌든 싫어요" 

 

"그러지말고 한 번 더 생각해봐, 그럼 연락 달라구 정작가" 

 

동식의 은근한 설득에 재성의 이마가 엷은 주름을 만들어냈다. 자그마한 규모의 잡지사에서 편집장으로 일 

 

하는 동식을 안 것이 올해로 삼년 째다. 월간잡지 '피닉스'에 정기 칼럼을 연재하면서 그와의 인연이 시작 

 

됐는데, 날카로운 인상과는 달리 무척이나 활달한 사람이었다. 재성이 쓴 칼럼은 오래 전에 끝났지만, 가끔 

 

씩 투고 형식으로 글을 올리곤 했던 것이다. 전국의 유명한 흉가나 폐가, 각종 미스테리한 장소들이 그 대 

 

상이었다. 그곳을 방문하여 사진 몇 장 찍으면 끝나는 간단한 일이었다. 가끔씩 인근 주민들의 인터뷰를 싣 

 

기도 했지만 그건 드문 일이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조합하고 재구성해서 재성 자신이 직접 꾸며내었 

 

다. 가상의 주민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한 뒤 그럴싸하게 포장하면 감쪽같았다. 애초에 그 장소란 것들이 과 

 

장되고 부풀려진 소문으로 인해 유명해진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소재고갈로 그만두긴 했지만 가끔씩 용돈 

 

벌이식으로 기고하곤 했던 것이다. 통화를 마치고 재성은 담배 한대를 꺼내 물었다. 열 평 남짓한 작업실은 

 

엄연한 금연구역이었지만, 지금은 재성 혼자였다. 창문을 열고 라이터의 부싯돌을 당겼다. 숫돌끼리의 마찰 

 

로 요란한 불꽃이 튀었지만 웬일인지 불이 붙지 않았다. 라이터를 들어 눈앞으로 가져오자 드러난 밑바닥 

 

이 보였다. 주황 빛깔의 일회용 라이터는 아직 스티커도 떼지 않은 상태였지만, 연료가 사라진 이상 플라스 

 

틱 덩어리에 불과했다. 재성이 라이터를 쥐고 위아래로 흔들기 시작했다. 반쯤 기울인 채 연거푸 부싯돌을 

 

당기자 가느다란 연기가 솟아올랐다. 무리하게 힘을 준 탓인지 엄지가 쓰라려왔지만, 다행히도 노란 불꽃 

 

을 피워낼 수 있었다. 연기를 깊숙히 들이마신채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중충한 하늘에선 금세라도 비 

 

가 쏟아질 기색이었다. 점심도 먹지 않은 오전이었지만 짙은 어둠으로 인해 해질녘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 

 

다. 

 

"후.." 

 

연기를 길게 내뿜자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듯 했다. 여느때와 달리 니코틴의 독특한 향을 느낄수는 없었지 

 

만 담배를 태운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었다. 한모금을 더 들이마신 뒤 재성의 시선은 다시 책상으로 

 

향했다. 노트북 화면에는 못다쓴 문장이 타이핑 되어있고, 그 오른쪽에는 구겨진 휴지 뭉치들이 수북히 쌓 

 

여있었다. 축축한 휴지 뭉치들은 한 덩어리로 쌓여 있었는데, 흐릿한 날씨와 어우려져 작업실 분위기를 한 

 

층더 눅눅하게 만들었다. 코끝이 간질거림을 느끼자 재성이 반사적으로 휴지를 집어들었다. 어제 새로 뜯은 

 

두루마리 휴지가 어느새 심지를 드러낼 정도로 줄어있다. 

 

"패앵" 

 

힘껏 코를 풀자 싯누런 콧물이 휴지 가득 쏟아진다. 끈끈하게 뭉쳐진 콧물이 포도알맹이처럼 탱탱하다. 

 

"부우웅" 

 

휴지를 아무렇게나 던지고 나자 핸드폰의 진동이 울린다. 액정화면에 낯익은 번호가 뜨자 재성의 얼굴이 

 

삽시간에 찌푸려진다. 들었던 핸드폰을 슬그머니 내려놓자 진동소리가 더욱 커진다. 재성의 씁쓸한 눈이 

 

제자리를 빙그르 돌고있는 핸드폰에 고정되었다. 

 

 

 

 

 

"은정아, 그만 헤어지자" 

 

커피잔을 쥔 그녀의 손이 움찔 거렸지만, 이내 정상으로 돌아왔다. 

 

"오늘 날씨 진짜 좋다, 이런날 교외로 나가야 하는데.... 오빠, 이왕 말 나온 김에 오늘 어때?" 

 

"은정아 그.." 

 

"잠깐만, 여보세요? 어라 현주니? 야 이게 얼마만이야, 진작에 연락좀 하지 기지배야" 

 

과장된 억양으로 그녀가 핸드폰을 받았다. 전화가 오지 않았다는건 그녀도 알고 재성도 안다. 그녀가 재성 

 

쪽을 힐끔거린채 계속 통화를 이어나간다. 

 

"오빠 미안해, 나 잠깐 통화좀 하고 올게" 

 

그녀가 대답도 듣지 않은채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조개껍질로 만든 목걸이가 위아래로 크게 휘청거린다. 

 

생일 선물로 사준 목걸이 속에는 그녀의 탄생석이 숨겨져 있다. 그녀는 재성이 당황할 정도로 기뻐했었다. 

 

비싸지도 않은 선물에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고마워하던 그녀가 떠올랐다. 화장실로 걸어가는 그녀를 보며 

 

재성은 소파 깊숙히 등을 파묻었다. 

 

"04학번 김은정이라고 합니다. 집은 울산인데 사정상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게 됐습니다. 취미는.." 

 

"그만그만..이거 너무 딱딱하잖아, 그런거 말고 진짜로 자기 소개를 해보란 말야" 

 

지켜보던 재성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남자친구는 있는지, 연애경험은 몇번인지 이런걸 말해줘야지" 

 

태훈은 짐짓 심각한 어조로 신입생들을 나무라고 있었지만, 구경하는 사람들 입가엔 하나같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체격도 크고 눈도 왕방울만한 선배하나가 연신 다그치자 신입생들의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남자친구는 없어요, 아직 한번도 사겨 본적이.." 

 

남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러댔다. 심리학 동아리 '프로이즈'를 구성하고 있는 시커먼 남자들 다섯명이 

 

내지르는 소리에 세 평 남짓한 동아리실이 떠나갈듯 들썩거렸다. 하얀블라우스를 목 끝까지 잠근채 긴 생머 

 

리를 늘어뜨린 그녀는 이 상황이 어색한지 연신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있었다. 조금은 촌스러웠지만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느껴졌다. 저만치 떨어져 있던 재성이 천천히 다가와 그녀 앞에 섰다. 

 

"다른 동아리 놔두고 하필 재미도 없는 심리학 동아리에 온 이유가 뭐지?" 

 

재성의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얼핏 감정을 상하게 할수도 있는 질문이었지만, 그녀는 순순 

 

히 대답했다. 

 

"히스테리 증세가 조금 있어요..거의 다 치료 됐는데 한 번 연구해 보려구요.." 

 

"히스테리라면 가벼운 신경성 질환 아닌가? 근데 그게 치료 받을 만큼 심각해?" 

 

"심하진 않은데 유전성 질환이어서 완치는 힘들다고..." 

 

그녀의 대답에 다들 벙어리마냥 입을 다물었지만 재성만이 웃으면서 어깨를 두드렸다. 

 

"같이 한번 연구해보자, 못 이겨낼 병은 세상에 없어" 

 

재성의 손길에 그녀가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또깍거리는 하이힐 소리에 재성이 현실로 돌아왔다. 그녀가 소파에 앉아 재성을 바라본다. 붉은기가 가시 

 

지 않은 두눈을 애써 감추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물을 틀어 놓은 채로 울었을 것이다. 소리 죽여 

 

울었을 그녀를 생각하자 재성의 가슴속이 납덩이 마냥 무거워졌다. 

 

"요즘 머리가 복잡해..마감 날짜도 다가오는데 글은 반도 못썼어, 게다가.." 

 

"나 때문에 그런거라면 며칠간 안보면 되잖아, 일 끝내고 다시 만나자. 응? 그러면 되잖아" 

 

그녀의 속사포같은 말에 재성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이번이 벌써 세번째 이별 통보였다. 진작에 헤어졌어 

 

야 하지만, 끈질긴 설득에 끝내는 마음이 약해져 버리고 마는 그였다. 굳게 마음 먹었다가도 울면서 매달리 

 

는 그녀를 보면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질질 끌어온 것이 벌써 일년이 넘는다. 

 

"안돼 안돼, 절대로 안돼..이건 기다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냐" 

 

재성이 벌썩 일어서서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제 네 전화도 안받을거고 더이상 만나지도 않을거야..진짜로 끝이야" 

 

재성이 스스로에게 다짐이라도 하듯 읊조렸다. 

 

그게 삼일전 일이었다. 하루동안은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재성은 커다란 해방감에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몇년 묵은 변비가 모조리 배출되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글도 술술 써졌다. 반 년전 

 

부터 쓰기 시작한 추리소설이 근 보름째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던 중이었다. 한번 발동이 걸리자 둑이라도 

 

터진것 처럼 신들린듯 써내려갔다. 생동감 넘치는 문장에 절묘한 묘사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어제부터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배터리를 두어시간 뺐다가 다시 끼웠을때 재 

 

성은 두 눈을 의심했다. 

 

부재중 -180통- 

 

잡지사에서 온 두통을 제외하면 모두 그녀에게서 온 전화였다. 섬짓한 느낌과 함께 머리카락이 쭈삣섰다. 

 

사귀면서 유달리 집착이 심하긴 했지만 이정도는 아니었다. 재성은 다시금 배터리를 빼버리곤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옹달샘처럼 샘솟던 창작의 열기는 대번에 식었다. 저녁을 먹기전에 다시 한번 핸드폰의 전원 

 

을 켰다. 화면에 S사의 로고가 어지럽게 뜬다. 몇초나 지났을까 부팅이 완료된 핸드폰에서 진동이 길게 울 

 

린다. 한번 울린 진동은 그칠줄을 모르고 계속 울렸다. 밀린 메시지가 한꺼번에 수신되면서 생기는 현상이 

 

었다. 쉴새 없이 울리던 진동이 어느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내가 잘못했어..다시는 안그럴게- 

 

-미안해 정말 미안해, 제발 전화좀 받아줘- 

 

-나 지금 미쳐버릴것 같아.. 오빠 제발그러지마 내가 노력할게- 

 

-미안해 미안해 정말이지 귀찮게도 안하고 간섭도 안할게 정말 반성 많이 했어- 

 

-사랑한다고 했잖아..이제 와서 이러면 어떡해..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자- 

 

-야 이 개새끼야, 나한테 이러고도 니가 잘살거 같아? 당장 전화 안받을래?- 

 

-아아..내가 미쳤나봐..맙소사 내가 무슨 소릴 한거야..오빠 제발 용서해줘- 

 

재성은 쉴새없이 문자를 읽어 내려갔다. 그녀의 절절한 심정이 느껴졌지만 이젠 되돌릴 수가 없었다. 하루 

 

동안의 달콤한 안식은 재성의 결심을 확고히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했다. 문자를 삼분지 이 가량 읽었을 

 

때 화면이 갑자기 바뀌어 버렸다. 

 

'아뿔사' 

 

화면 하단에선 통화시간이 1초씩 더해지고 있었고 중앙에는 익숙한 번호가 떠있었다. 실수로 전화를 받아 

 

버린 것이다. 

 

"아..오빠..전화 받았구나.."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오빠..고마워..내 기도가 통했나봐..정말 고마워 오빠.. 

 

"재성이 핸드폰을 뗀 채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냥 끊어버리고 싶었지만 웬지 그래서는 안될 것 같았다. 빨 

 

리 단념시키는게 그녀에 대한 예의리라. 재성의 눈이 가늘게 떠지면서 딱딱한 저음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 사실 사랑하는 여자가 있어,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미안하다..이제 연락하지마 번호 바꿀거야" 

 

단숨에 말하고 나서 잽싸게 폴더를 닫아버렸다. 긴장과 흥분으로 재성의 호흡이 약간 거칠어졌다. 거짓말이 

 

지만 효과는 무서웠다. 더이상 그녀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전원을 한참동안 켜두었지만 핸드폰 

 

은 조용했고, 재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비록 고질적인 축농증에 괴로웠지만 그녀만큼은 아니 

 

었다. 콧구멍속이 점막을 중심으로 꽉 막혀서는 공기 한 점 허용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버틸만했다. 꽃가루 

 

가 날리는 이맘때쯤이면 한 두달 고생하는 질병이었다. 풀고 또 풀어도 누런코는 끝없이 나왔다. 도대체 어 

 

디에서 저것들을 계속 생산해 내는것일까..재성은 밥먹기 전까지 코를 쥐고는 천천히 주물럭거렸다. 이것이 

 

정확히 어제 저녁 무렵의 일이었다. 

 

"부우웅" 

 

적막한 작업실안을 진동소리만이 장악했다. 작가 세명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이곳 작업실엔 재성뿐이었다. 

 

한명은 가벼운 교통사고로 입원중이었고, 한명은 중국에 조사차 가 있는 상태였다. 재성이 생활하는 독신 

 

자 아파트에서 작업실까지는 도보로 20분 거리였지만, 언제나 버스를 타는 그였다. 북한산의 끝자락에 위치 

 

한 이곳 작업실까지는 쉴새 없는 오르막길이었다. 걸어서 출근한 적도 있지만, 작업실에 도착할 무렵이면 

 

흘러내린 땀이 엉덩이까지 번져 있곤 했다.길게 울린 진동이 멈추고 다시금 적막이 찾아왔다. 답답한 마음 

 

에 창문을 열자 시커먼 구름이 사방을 뒤덮고 있었다. 흐린날씨가 며칠째 계속되었지만 끝끝내 비가 쏟아지 

 

진 않았다. 열었던 창문을 닫고서 침대에 주저 앉았다. 낡은 탁자 두개를 엮어 만든 간이침대가 삐그덕 소 

 

리를 내며 흔들린다. 

 

"부우우웅" 

 

또다시 진동소리가 울렸다. 문자가 온 듯 진동은 한번으로 끝났고 재성은 슬며시 핸드폰 폴더를 열었다. 

 

-죽여버릴거야..거기 꼼짝말고 있어- 

 

가슴이 덜컥 내려 앉으면서 하마터면 핸드폰을 떨어뜨릴뻔 했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침과 동시에 온몸에 소 

 

름이 돋아왔다. 갑자기 현기증 이라도 난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웠다. 침대에 눕자 천장이 재성을 중심으로 

 

빙빙 돌았다. 꽃무늬로 도배된 천장이 파도처럼 울렁거린다. 눈에 힘을 주고서 똑바로 노려보았지만 잠시 

 

늦춰지는가 싶더니 다시금 빙빙돈다. 천장도 돌고 침대도 돈다. 재성이 참지 못하고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자신을 깨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재성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주위는 새까만 어둠이었고, 째 

 

깍 거리는 벽시계만이 규칙적으로 울려댔다. 

 

"사삭" 

 

재성의 귓가에 이질적인 음향이 들려왔다. 미약한 소리였지만 분명 익숙한 소리는 아니었다. 재성이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어느새 해가 진 듯 창밖으로도 깜깜한 어둠뿐이었다. 약간 어지러웠지만 아까보다 

 

는 한결 나았다. 귀를 세우고 천천히 주위를 살폈다. 

 

"사사삭" 

 

이번에는 또렷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소리는 현관쪽에서 들렸고, 종이끼리 마찰되면서 나는 소리인 듯 

 

싶었다. 현관쪽으로 다가간 재성이 불을 키려고 전등 스위치에 손을 갖다댔다. 

 

"사삭 사삭" 

 

잠시 고민하던 재성이 불을 켜는 대신 방범구멍으로 눈을 갖다댔다. 누군가가 현관의 윗쪽 틀을 향해 손을 

 

뻗고있었다. 손이 안닿이자 폴짝폴짝 뛰면서 손을 뻗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반대편 손에 들린 신문지 뭉치 

 

가에서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삭 사악" 

 

아무렇게나 뭉쳐진 신문의 끝이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끝이 벌어지면서 무엇인가가 뾰족 솟아나왔다. 

 

어느새 어둠에 적응한 재성의 각막에 그것이 크게 맺혔다. 

 

'식칼..' 

 

갑자기 헛구역질이 치밀었다. 목젖까지 솟아오른 위액을 간신히 삼켜내고 시선을 고정시켰다. 뜀띠기를 하 

 

던 그림자가 행동을 멈추고는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죽일테다..사지를 도려내 버릴테다.." 

 

그림자가 방범구멍으로 눈알을 불쑥 들이밀었다. 

 

"으헉" 

 

재성의 입에서 헛바람이 터져나왔다. 재빨리 입을 막았지만 소리가 들렸을 수도 있다. 그림자는 은정이었 

 

다. 잠옷차림의 그녀가 식칼을 들고선 재성을 찾아온 것이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한참을 살피던 그녀 

 

가 다시 뛰기 시작한다. 

 

'침착하자'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 재성은 슬금슬금 물러섰다. 아침에 문을 잠궈두지 않았다면 자신은 꼼짝없 

 

이 죽었을 것이다. 비로소 그녀의 정신질환이 떠올랐다. 원래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재성때문에 심해진 것 

 

인지 알수 없었지만 한가지는 확실했다. 

 

'미쳤다..완전히 미쳐버렸다' 

 

재성은 경찰을 부르기 위해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다. 더듬거리며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지만 증발이라도 한 

 

듯 종적이 묘연했다. 

 

'아..' 

 

순간 둔탁한 충격이 뒤통수를 내리쳤다. 불현듯 그녀가 찾는게 무엇인지 떠올랐다. 그녀가 손을 뻗어대는 

 

문 틀에는 열쇠가 숨겨져있다. 비상시를 대비해 몰래 숨겨둔 것인데 불현듯 그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평소 

 

작업실에서 자주 숙식을 취하던 재성에게 그녀는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히 열쇠의 

 

존재를 귀띔해 주었을 것이다. 재성의 시선이 문득 간이침대로 돌아갔다. 재성은 저곳에서 그녀와 격렬한 

 

섹스를 나누곤했다. 그녀의 달뜬 신음소리가 삐그덕대는 침대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듯 했다. 녹슨 침대의 

 

울림이 점점 빨라진다. 규칙적으로 흔들리던 침대소리가 광폭하게 터져나온다. 무서운 속도로 발광함과 동 

 

시에 그녀의 입에서 하이톤의 비명이 터져나온다. 눈동자가 뒤집히면서 그녀의 허리가 활처럼 휘어진다. 그 

 

녀가 재성을 밀어내려고 온몸을 퍼덕거린다. 재성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미친듯이 벗어나려 한다. 침대의 

 

울림이 극한에 다다름과 동시에 재성이 그녀의 몸을 단단히 움켜쥔다. 호흡을 멈추고 어금니를 힘껏 문채 

 

허리운동에 모든걸 집중시킨다. 그녀의 숨이 꺽꺽 넘어간다. 더이상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온몸으로 절규한 

 

다. 마침내 재성의 움직임이 멈추었고, 그녀는 짐승의 울음소리를 뿜어낸다. 그녀의 번들거리는 복부가 경 

 

련으로 들썩 거린다. 허벅지와 가슴의 잔경련이 여진처럼 몰아친다. 

 

"하." 

 

재성의 바지가 터져나갈 듯 솟구쳤다. 혈액을 한계까지 머금은 페니스에선 고통마저 느껴졌다. 이 상황에 

 

도 본능은 어쩔수 없는것인가. 재성은 쓴웃음을 머금은채 계속해서 핸드폰을 찾아 나갔다. 

 

"부우웅" 

 

별안간 천둥같은 소리가 터져나왔다. 

 

'젠장..하필이면..' 

 

덕분에 책상아래에 떨어져 있던 핸드폰을 찾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핸드폰을 본 재성의 

 

안색이 꺼멓게 물들었다. 바로 그녀의 전화였다. 진심으로 그녀가 무서워지기 시작하는 재성이었다. 

 

"삭 삭삭삭삭" 

 

신문지 소리가 미친듯이 터져나왔다. 확신을 가진듯 그녀의 쿵쿵뛰는 소리가 보란듯이 들려온다. 재성은 캐 

 

비닛을 열고 여행용가방을 꺼냈다. 꾸깃꾸깃한 그것을 펴자마자 재빠르게 물건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노 

 

트북을 시작으로 각종 서류와 서적들이 쉴새 없이 채워졌다. 

 

"채챙" 

 

재성이 가방의 노끈을 묶었을때 요란한 쇳소리가 울렸다. 

 

"철컥..철컥" 

 

열쇠를 찾은 듯 끔찍한 음향이 들렸다. 창문을 열자 차가운 밤바람이 얼굴로 쏟아진다. 아래쪽을 보니 몇명 

 

의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쿠웅" 

 

우선 가방을 집어던졌다. 육중한 소리에 사람들이 재성을 올려다 봤지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창밖으로 몸 

 

을 밀어넣은 뒤 가스배관을 잡았다. 작업실은 3층이었지만, 비스듬한 오르막길에 위치한 탓으로 실제로는 4 

 

층도 넘어보였다. 도시가스가 지나는 통로인 배관의 온도는 무척이나 낮았다. 그것을 단단히 움켜쥐고선 삐 

 

져나온 이음새로 발을 구겨넣었다. 이음새는 발가락을 간신히 가릴정도의 크기였지만 그에겐 천금보다 소중 

 

한 것이었다. 

 

"콰앙" 

 

현관문이 열린 듯 거센 소리가 작업실안에서 터져나왔다. 배관의 이음새들을 밟아가면서 재성의 몸이 천천 

 

히 아래로 내려왔다. 2층의 창문이 보이자 심호흡을 한 뒤 펄쩍 뛰어 내렸다. 

 

"털썩" 

 

딱딱한 아스팔트위로 재성의 몸이 거칠게 착지했다. 가방을 매고 위를 올려다보자 휑하게 열린 창문만 보였 

 

다. 

 

"윽" 

 

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발목에 시큰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충격으로 약간 접질러진 모양이었다. 두 세명 

 

의 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쳐다봤지만 재성은 말없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도 있었지만, 위험했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에 그들이 도움이 될리 없었다. 칼이라도 보면 뒤도 안 돌아보 

 

고 도망칠것이 분명했다. 한쪽발을 질질 끌면서 한참을 내려가자 눈앞에 도로가 나타났다. 때마침 택시한대 

 

가 다가오자 재성이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택시는 조금의 속력도 줄이지 않은채 재성을 지나쳐 

 

버렸다. 

 

'빌어먹을' 

 

온갖 저주를 택시기사에게 퍼부었다. 북한산의 중턱에 위치한 2차선 도로는 택시를 끝으로 텅텅 

 

비어버렸다. 갑자기 뒷목 쪽에 따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돌아보자 십 여미터 거리에 그녀 

 

가 서있었다. 신문지는 온데간데없고 오롯이 드러난 식칼만이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잠옷차림의 그녀가 

 

기이한 표정을 지은 채 천천히 다가왔다. 곰돌이가 그려진 잠옷의 하의에는 시뻘건피가 흥건했다. 사타구니 

 

부터 허벅지까지 붉은 물감을 뿌려놓은 듯 번져있었다. 재성의 머릿속에 문든 오늘날짜가 떠올랐다. 그녀 

 

의 생리기간이 분명했다. 생리혈을 죽죽 쏟은 채 다가오는 그녀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진다. 재성이 그 

 

녀와 같은 보폭으로 뒷걸음질 쳤다. 고요한 도로 위를 걷는 두 사람을 가로등만이 지켜보고 있었다. 

 

"위잉" 

 

재성의 귓가로 희미한 울림이 느껴졌다. 

 

'엔진소리' 

 

울림은 점점 커져서 재성이 서있는 도로까지 진동이 느껴졌다. 이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의 움직임엔 

 

변화가 없었다. 

 

"빵.빵" 

 

마침내 승용차 한대가 요란한 경적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모조리 켜진 헤드라이트 불빛에 삽시간에 대낮처 

 

럼 밝아진다. 검은색 소나타한대가 도로를 가로막은 재성에게 연거푸 경적을 울려댔다. 

 

'하나..둘.셋!" 

 

속으로 숫자를 센 뒤 재성의 몸이 쏜살같이 소나타앞으로 뛰어들었다. 속력을 늦추고 있던 소나타의 바퀴 

 

가 완전히 정지하자, 재성이 양손을 미친듯이 흔들었다. 

 

"아저씨 뭐야..미쳤어?" 

 

창문이 열리고 앳된 얼굴의 청년 하나가 고개를 내민다. 뒤를 바라보자 식칼을 높이 든 채 그녀가 뛰어오 

 

고 있었다. 

 

"헉..저 아줌마는 또 뭐야?" 

 

청년의 눈이 재성의 뒤편을 향했다. 

 

"철커덕" 

 

손잡이를 거칠게 당기자 문이 열렸다.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민첩하게 차에 올랐다. 

 

"빨리 출발하세요, 저 여자 강도예요" 

 

재성이 멍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청년에게 소리쳤다. 그녀가 본네트를 지나 재성이 탄 앞좌석으로 다가 

 

왔다. 

 

"문잠궈 빨리" 

 

재성의 벼락같은 외침에 청년이 반사적으로 버튼을 눌렀다. 

 

"척" 

 

운전석의 락 버튼이 눌리자 동시에 모든 손잡이가 잠겼다. 

 

"철컥..철컥" 

 

그녀가 미친듯이 손잡이를 당겼지만, 잠긴 차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면서 설명할게요, 빨리 출발 합시다" 

 

재성의 말에 청년이 기어변속기에 손을 올렸다. 

 

"쩡..쩡" 

 

별안간 조수석 창문에서 번개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녀가 식칼로 창문을 찍어대고 있었다. 

 

"쩡.쩡.쩡.." 

 

어찌나 세게 찍었는지 거미줄같은 금이 창문전체로 퍼져나갔다. 

 

"씨발..도대체 뭐야" 

 

청년은 욕짓거리를 뱉으면서 차를 출발시켰다. 차가 나아가면서 허공을 내젓는 그녀의 식칼이 보였다. 

 

"하아.." 

 

재성이 그제서야 비로소 참았던 한숨을 몰아쉰다. 흉물스럽게 금이 간 창문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우측 백 

 

미러를 보자 차를 뒤쫓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의 모습은 점점 작아지더니 마침내 사라져버렸다. 

 

"부우웅" 

 

진동소리에 재성의 몸이 움찔거렸다. 핸드폰을 꺼낸 뒤 번호를 확인했다. 

 

'은미..' 

 

은정의 동생인 은미였다. 잠시 생각하던 재성이 폴더를 젖혔다. 

 

"어..은미야" 

 

"재성오빠, 괜찮아요? 저희 언니 지금 그쪽으로 안갔어요?" 

 

은미의 목소리가 급하게 튀어나왔다. 

 

"어떻게 된 일이야? 나 죽을뻔 했어..칼까지 들고 찾아왔단 말야" 

 

"오빠 죄송해요..언니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어요..요며칠 이상했는데 기어이 일이 터졌네요" 

 

"완전히 미친거 같아, 눈빛이 완전 맛이갔다구" 

 

잠시 조용하던 핸드폰에서 은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지금 병원에 연락했어요, 한시간에 안에 강제입원 시킬거예요"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거 아냐?" 

 

"신고해도 정신병원으로 갈거예요, 언니 상태 보셨잖아요" 

 

재성이 탄 소나타가 어느새 번화가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청년이 길가로 차를 세운뒤 재성을 쳐다보았다. 

 

"알았어, 언니 입원하면 다시 연락줘" 

 

전화를 끊고 나자 두통이 몰려온다. 청년의 시선과 금간 창문을 느끼자 골통이 아파왔다. 

 

 

 

 

"잘 생각했어 정작가, 시간 넉넉하게 줄테니까 휴가라 생각하고 다녀와" 

 

"자료는 팩스로 보내주세요, 이따가 확인할게요" 

 

"알았어, 그럼 나중에 보자구" 

 

희뿌옇게 동이 터왔지만 재성은 집으로 가지 않았다. 동식과의 통화를 마치고 두시간이 더 지나서야 은미에 

 

게서 문자가 왔다. 

 

-방금 입원수속 마쳤어요.성동정신병원인데 의사말로는 상태가 안좋대요.몇년동안은 치료받아야 할거래요- 

 

문자를 읽고 나서야 재성의 발길이 집으로 향했다. 그가 사는 독신자 아파트는 오래된 건물이었다. 재건축 

 

허가가 떨어진걸로 알지만, 웬일인지 건설사측은 움직임이 없었다. 단지 내로 들어서자 5층 높이의 건물들 

 

이 들어왔다. 낡은 아파트 벽을 타고 온갖 넝쿨들이 꼬여있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그것들은 건물 전체를 

 

칭칭 감은채 또아리를 틀고있다. 여기저기 드러난 철근들까지 가세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재성 

 

이 자신의 동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다시 문자가 왔다. 

 

-언니가 잘못했지만..오빠도 나빴어요- 

 

재성의 무표정한 얼굴에 한가닥 조소가 어렸다. 사실 가슴 한켠에 그녀에 대한 연민이 존재했었지만 지금 

 

은 아니었다. 그녀가 식칼을 들고 나타난 후로 일말의 감정도 사라져버렸다. 소름끼치는 느낌과 함께 불쾌 

 

함만이 가득했다. 계단을 올라서자 습한 공기가 확 끼친다. 평소라면 썩은 곰팡이 냄새에 코라도 막았겠지 

 

만 지금은 괜찮았다. 꽉막힌 코에서는 어떤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모서리 곳곳에 거미줄이 지저분하게 걸 

 

려있었다. 오랜시간에 걸쳐 덮이고 덮인 거미줄은 새하얗게 뭉쳐진 상태였는데, 온갖 나방들로 기괴하게 장 

 

식되어있었다. 3층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 도착하자 재성의 미간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현관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집안은 난장판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은정은 작업실로 오기전에 재성의 아파트를 먼저 찾아왔던 

 

것이다. 그녀에게 열쇠를 복사해준 자신의 손을 잘라내버리고 싶었다. 각종 서적들이 허연 속살을 드러낸 

 

채 나뒹굴고 있었고, 일부는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박스 한가득 정리되어 있던 A4용지들도 모조리 흩어 

 

져 있었다. 재성은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자신의 방으로 갔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침대시트가 그를 반긴 

 

다. 팩스위에 놓인 종이를 거칠게 빼들곤 침대에 엉덩이를 붙였다. 전송된 지 얼마 안 된 듯 종이는 따뜻했 

 

다. 동식에게서 온 팩스의 내용은 간단했다. 

 

-기묘한 골목- 

 

경기도 상주시 은곡면에 위치한 이 골목에 붙은 이름이다. 너비 3미터 길이 30미터 가량의 이곳 골목에선 

 

올해 들어서만 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두 명이 자살했고, 세 명이 살해당했다. 범인은 아직까지 잡히지 

 

않았고... 

 

재성이 읽던 종이를 구겨버렸다. 위치와 이름만 알면 된다. 어차피 소문이란 믿을 것이 못된다. 자신이 직 

 

접 가서 확인하면 될 터였다. 장롱을 열고 필요한 옷가지들을 꺼냈다. 삼십분가량 움직이자 모든 짐을 쌀 

 

수 있었다. 빠트린 것은 없었다. 수많은 출장의 경험은 그에게 조금의 실수도 허락하지 않았다. 짐을 싸고 

 

나자 한꺼번에 졸음이 몰려왔다. 눕고 싶었지만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흉하게 찢어진 침대시트가 그의 

 

수면 욕구를 억눌렀다. 억지로 가방을 짊어진 채 집을 나섰다. 구름은 상당히 걷힌 상태였는데, 오랜만에 

 

햇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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