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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미스테리 [괴담/장편] 3 VS 1 (中)

리자 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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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성이 상주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 무렵 이었다. 완전히 곯아떨어진 그를 깨운 건 고속버스기사였다. 버 

 

스는 상주터미널에 도착해 있었고 재성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터미널 내부는 조용한 분위기였다. 노인 

 

몇 명만이 대합실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화장실로 들어서자 낡은 세면대가 눈에 들어왔다. 거울 속 

 

으로 부쩍 초췌해진 재성의 얼굴이 비쳤다. 푸석푸석한 피부와 두 눈은 한가득 피곤을 머금고 있었다. 헝클 

 

어진 머리 한쪽은 푹 눌려 있었고, 얄팍한 입술 위에는 하얀 껍질이 뒤덮고 있었다. 수도꼭지를 틀자 물이 

 

세차게 쏟아졌다. 강한 수압에 사방으로 물방울들이 튀자 열었던 꼭지를 반이나 잠갔다. 양손 가득 물을 모 

 

은 채 얼굴로 끼얹었다. 차가운 느낌에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듯 했다. 재성은 물기도 닦지 않은 채 

 

화장실을 나왔다. 터미널을 빠져 나오자 서늘한 바람이 그를 반긴다. 수분이 증발하면서 얼굴 전체가 말할 

 

수 없이 시원해졌다. 길게 늘어선 택시하나를 타고선 목적지로 향했다. 번화가를 벗어나자 들판이 즐비한 

 

시골의 풍경이 펼쳐진다. 대규모의 비닐하우스 단지를 지나자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가 나타났다. 

 

“은곡에 사시나봐요?” 

 

“아뇨, 부모님이 사세요” 

 

푸근한 인상의 40대 택시기사가 라디오볼륨을 줄이며 말을 걸어왔다. 재성이 초행길인 것을 알면 빙 둘러 

 

서 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꽤 많이 바뀌었네요” 

 

“네, 여기도 땅값이 엄청 올랐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택시 팔아서 땅이나 사두는 건데” 

 

택시가 개울 위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자 할증이 붙으면서 계기판의 요금이 껑충 뛰었다. 

 

“이제 다 왔어요, 근데 은곡 어디라고 하셨죠? 

 

재성의 눈앞으로 옹기종기 들어앉은 주택들이 보였다. 주택단지 뒤편으로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얼 

 

핏 보기에도 20층이 넘어 보였다. 

 

“혹시 근처에 고시원이 있나요?” 

 

재성의 물음에 택시기사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고시원요? 가만보자.. 고시원이라..” 

 

택시가 주택단지로 들어서자 아이들 서넛이 흙장난을 하는게 보였다. 

 

“분명히 봤는데..이상하네” 

 

골목사이를 몇 바퀴 돌자 어느새 요금이 2만원까지 올라 있었다. 재성이 택시를 세우려는 찰나 택시기사가 

 

소리를 질렀다. 

 

“찾았다, 저깄네요” 

 

재성의 눈에 저만치 떨어진 3층짜리 건물이 들어왔다. 갈색 벽돌로 지은 건물은 상당히 낡아보였는데 넓은 

 

대지에 홀로 서있었다. 

 

“수고 하세요” 

 

택시에서 내리자 건물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어스름한 황혼의 노을이 건물을 비추고 있었는데 왠지 모 

 

를 스산함이 느껴졌다. 건물의 출입문은 반쯤 열린 상태였고, 양쪽 모두 기괴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일층 

 

은 사용하지 않는 듯 철제셔터가 내려져 있었는데, 큼직한 자물쇠가 세 개나 채워져 있었다. 이층으로 올라 

 

가자 카운터가 보였다. 작은 창문 너머로 총무로 보이는 남자가 티비를 보고 있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은 비스듬히 누운 채 한쪽 손으로 연신 사타구니를 긁어대고 있었다. 

 

“저기...” 

 

“낄낄” 

 

재성이 창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청년이 요란스레 웃는다. 청년의 벌어진 입사이로 못생긴 뻐드렁니가 드러 

 

났다. 청년의 손이 아예 바지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바지 전체가 들썩 거릴 정도로 벅벅 긁던 청년이 별안 

 

간 창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심한 곱슬머리에 눈꼬리가 위로 째진 것이 영락없는 쥐새끼 상이었다. 

 

“방 좀 보려구요” 

 

청년은 뱁새 같은 눈을 들어 재성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드르륵” 

 

창문이 열리고 청년이 입을 열었다. 

 

“창문 있는 방은 다 찼어요, 그래도 괜찮으면..” 

 

재성은 잠시 고민했다. 취재차 머무르는 지방마다 고시원을 잡았었다. 그 중 창문 없는 방도 분명 있었지 

 

만, 그때는 일이 목적 이었다. 잠만 잘 수 있으면 충분했었지만 지금은 망설여졌다. 자신의 목적엔 분명히 

 

휴가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저씨, 여기서 고시원은 이 곳 뿐이예요. 어떡하실 거예요?” 

 

재성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청년이 재촉했다. 

 

“그거라도 주세요” 

 

“드르륵” 

 

창문이 닫히고 청년이 카운터에서 나왔다. 열쇠 꾸러미를 쥔 채 청년이 재성 앞으로 다가왔다. 청년의 키 

 

는 재성보다 약간 컸는데, 쇄골이 드러날 정도로 말라 있었다. 

 

“비밀번호는 5896이예요. 이렇게 순서대로 네 개” 

 

청년이 비밀번호를 누르자 철커덕하고 걸쇠가 열린다. 청년이 들어가자 재성도 뒤따라 들어섰다. 재성을 처 

 

음 반긴 것은 십 수 켤레의 신발들이었다.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신발이 그야말로 난장판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청년이 신고있던 슬리퍼를 그것들 위에 대충 벗어놓고는 복도로 올라섰다. 재성도 신발을 벗고서 

 

그를 뒤따랐다. 고시원의 복도는 전체적으로 어두 침침했는데, 드문드문 매달린 벽등 만이 간신히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마치 컴컴한 영화관 속을 걷는 것 같았다. 복도를 따라 이리저리 꺽어가자 수십개의 방들 

 

이 나타났다. 

 

“여기 중앙에 있는 방들은 복도창문이 있는데, 벌써 다찼어요” 

 

외곽으로 둘러쳐진 복도 사이에는 각각 네 개의 방이 블록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모두 복도 쪽으로 창문이 

 

나있었다. 창문은 재성의 눈높이에 절묘하게 위치해 있었으나 모두 굳게 닫힌 상태였다. 공동세면장과 화장 

 

실을 지나자 복도의 끝이 나타났다. 청년이 멈춰선 곳은 다림질대가 놓여있는 복도의 마지막 방이었다. 

 

다림질대를 들어 한쪽으로 치우자 방문의 손잡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철커덕" 

 

청년이 열쇠로 문을 열자 새까만 공간이 나타났다. 벽을 더듬어 불을 켜자 두 평 남짓한 방안이 삽시간에 

 

밝아졌다. 오른편으로 침대 매트리스가 길게 놓여 있었고, 왼편에는 책상과 수납장이 들어서 있었다. 침대 

 

받침대의 옆면에도 길쭉한 서랍이 달려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꽉 들어찬 느낌이었다. 책상아래에는 소형 냉 

 

장고와 함께 플라스틱 휴지통이 있었는데, 휴지통 바닥에는 말라붙은 휴지조각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조용하게 통화는 할 수 있는데, 담배는 절대로 안됩니다" 

 

청년이 열쇠꾸러미의 고리를 벌려 열쇠를 빼냈다. 열쇠를 내밀자 재성이 손끝으로 그것을 받았다. 사타구 

 

니를 긁어대던 청년의 모습이 떠오르자 열쇠를 내던지듯 책상에 올려놓았다. 

 

"이 방으로 할게요" 

 

재성이 봉투에서 돈을 꺼내주자 청년이 냉큼 받아 채갔다. 문을 닫고 나서 가방을 내려놓자 그나마 있던 여 

 

유공간이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전등스위치 아래에 위치한 또다른 스위치를 누르자 천장 한가운데 있던 환 

 

풍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위이잉" 

 

날카로운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기름기가 모조리 말라버린 듯 환풍기에선 철판 긁는 소리가 터져 나 

 

왔다. 뻑뻑한 플라스틱 날개가 회전하면서 내는 소리에 재성의 인상이 절로 찡그러졌다. 

 

"탁" 

 

환풍기를 끄자 거짓말처럼 소음이 사라졌다. 침대 위에 주저앉은 채 가방을 열었다. 구겨진 옷가지와 잡동 

 

사니들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가방 속을 들여다 보고 있으려니 불현듯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일어서서 전 

 

등을 끄자 칠흑 같은 어둠이 나타났다. 한줌의 빛도 없는 완전한 어둠이다. 조심스럽게 몸을 눕자 척추 쪽 

 

에서 요란한 뼈소리가 터져 나왔다. 눕자마자 재성의 몸이 침대 속으로 점점 가라앉는다. 침대 한가운데 깊 

 

이 파묻히는 기분이다. 재성은 그렇게 기절하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재성의 눈꺼풀이 가볍게 떨리면서 눈이 뜨였다. 얼마나 잔 것일까. 방안은 여전히 칠흑같이 어두웠고 주위 

 

는 고요했다. 물먹은 솜 마냥 축 늘어진 몸을 일으켜 전등을 켰다.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보니 벌써 점심때 

 

가 가까워져 있었다. 꿈도 꾸지 않고 내리 15시간을 잤던 것이다. 문득 텁텁한 공기가 느껴졌다. 방안은 재 

 

성이 밤새 뿜어낸 이산화탄소로 가득 차 있었다. 방문을 열자 신선한 공기가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확 

 

실히 느낌이 달랐다. 깊게 들이마시자 폐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복도로 나온 재성이 엉거주춤 걷기 

 

시작했다. 딱히 갈곳을 정해두진 않았지만 일단은 걸음을 옮겼다. 첫 번째 모퉁이가 보이자 왼쪽으로 방향 

 

을 틀었다. 중앙의 방들이 나타나자 다시금 일직선으로 걸어갔다. 군데군데 굴러다니는 먼지 덩어리가 눈 

 

에 띄었다. 머리카락을 중심으로 뭉친 먼지들이 색바랜 솜사탕처럼 보였다. 복도창이 있는 방들은 어제 

 

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굳게 닫힌 상태였다. 공동세면장을 지나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자 양쪽으로 방 

 

들이 나타났다. 세 걸음 정도를 옮겼을 때 오른쪽에서 따뜻한 습기가 느껴졌다. 곁눈질로 힐끗 보자 중앙방 

 

들 중 하나의 창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고개를 돌리면 내부를 볼 수도 있었겠지만, 왠지 가슴이 찔리는 

 

듯 하여 그만두었다. 중앙의 방들을 모두 가로지르자 오른쪽에 주방이 나타났다. 잊고 있었던 공복감이 스 

 

멀스멀 피어올랐다. 주방으로 들어서자 싱크대와 가스렌지가 보였다. 싸구려 원목으로 만든 식탁에는 네 개 

 

의 의자가 삐뚤삐뚤 놓여 있었다. 식탁 구석에 놓인 밥통을 여니 반쯤 남은 밥이 보인다. 건조대에서 그릇 

 

하나를 가져와 밥을 담았다. 냉장고 문을 열었지만 밑반찬은 보이지 않고, 양파 몇 개만이 덩그러니 채워 

 

져 있었다. 밥그릇을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자 싱크대 한쪽으로 냄비하나가 보였다. 냄비를 열자 걸죽한 된 

 

장찌개가 보였다. 냄비를 가져와 밥과 함께 꾸역꾸역 씹었다. 마지막 한술을 뜨려는 순간 주방의 문이 벌 

 

컥 열렸다. 뱁새눈깔의 총무와 건장한 체격의 남성 하나가 동시에 들어섰다. 총무는 재성을 본체만체하고 

 

선 싱크대로 걸어갔다. 같이 온 남성이 재성을 보고 살짝 눈인사를 건넨다. 재성도 얼떨결에 인사를 받아주 

 

자 남성이 씨익 웃는다. 30대 초반이나 됐을까. 건장한 체구에 단정히 깍은 스포츠머리가 꽤나 호감을 자아 

 

냈다. 여기저기를 살피던 총무가 뭔가를 찾는 듯 식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재성 앞에 놓인 냄비를 발견하 

 

자 별안간 소리를 지른다. 

 

"아니 미쳤어요? 왜 이걸 먹고있어..이거 상했단 말야" 

 

총무가 거칠게 냄비를 빼앗고는 싱크대로 가져간다. 

 

"며칠을 굶으셨나, 왜 상한걸 먹고 지랄이야.. 배탈나면 누구한테 덤터기 씌우려구" 

 

총무는 연신 시부렁거리면서 냄비를 씻었다. 

 

"미안해요, 제가 요즘 냄새를 못 맡아서" 

 

재성이 겸연쩍은 듯 뒷통수를 쓸어 내렸다. 

 

"못 맡으면 다야..혓바닥은 빨통 빨때만 쓰는가.." 

 

총무의 계속되는 무례에 재성의 한쪽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재성이 뭐라고 대꾸하려는 찰나 설거지를 마 

 

친 총무가 신경질적으로 나가버렸다. 

 

'쥐새끼 같은게..' 

 

재성이 사라지는 총무를 보며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왜 냄새를 못 맡으세요? 다치셨어요?" 

 

남아있던 남성의 입에서 가느다란 미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체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연약한 목소리였 

 

다. 

 

"아뇨, 알레르기성 축농증 이예요.. 조금 지나면 괜찮아져요" 

 

"아..그러시구나, 근데 여기는 언제 오셨어요?" 

 

"어제왔어요" 

 

남성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경극배우의 그것처럼 희안하게 들렸다. 

 

"반갑게 지내요, 전 209호실에 있어요" 

 

남성이 손을 내밀자 재성도 어색하게 손을 내밀었다. 남성마저 주방에서 나가버리자 재성이 식탁에서 일어 

 

섰다. 밥이 조금 남았지만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다. 그도 상한걸 알았으면 절대로 먹지 않았을 것이었다. 

 

입안을 헹구고 나서 주방을 나섰다. 자신의 방으로 오는 길에 세면장에 들려 가볍게 세안을 했다. 말 

 

이 공동 세면장이지 세면대 세 개와 샤워실 하나가 전부였다. 물기를 대충 털어버리곤 복도로 나왔다. 먼지 

 

들을 피해 다니며 걸어가자 어느새 중앙복도가 나타났다. 재성의 시선에 복도에 서있는 누군가가 들어왔 

 

다. 까치발을 든 채 창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재성이 한참을 다가가도록 훔쳐보기에 열중해 있다. 

 

"아흠" 

 

슬며시 헛기침 소리를 내자 슬그머니 돌아본다. 작달만한 키에 중년 남성이었다. 남성은 부끄럽지도 않은 

 

지 재성을 슬며시 노려보고는 복도 한켠으로 사라졌다. 그가 쳐다보던 창문은 아까전에 재성이 보았던 그 

 

창문이었다. 

 

'뭘 보고 있던 거지?' 

 

재성이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창문을 힐끔거렸다. 

 

'헛' 

 

일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똑똑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침대에는 희끄무레한 물체가 엎드려 있었는 

 

데, 본능적으로 그것이 여자의 알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매끈한 허리라인 아래로 탐스런 둔부가 불 

 

룩 솟아있는 그것은 분명한 여자였다. 시커먼 머리카락이 날개뼈 근처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져 있었는 

 

데, 불까지 켠 상태로 대범하게 누워 있었던 것이다. 재성의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혈액이 중심부로 쏠리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에 생리혈을 질질 흘린 채 다가오던 은정의 모습이 떠올랐다. 끈적한 암컷의 냄새가 그 

 

의 호흡을 거칠게 만들어버렸다. 

 

"하아" 

 

자신의 방문 앞을 어제처럼 다림질대가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을 번쩍 들어 한쪽으로 치운 뒤 문을 열었 

 

다. 책상에 앉고서도 두근거림이 한동안 계속 되었다. 실수로 창문을 열어놨던 것일까. 재성은 실수일거 

 

라 믿었다. 어제까지는 닫혀있었으니까 분명히 실수일 것이다. 환기시킨다고 열어놓은 채 깜빡 잠이 들었는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에 대한 생각을 하며 가방을 풀었다. 옷가지들을 꺼내서 수납장에 차곡차곡 넣 

 

었다. 서적과 사무용품들은 책상 한쪽에 가지런히 진열시켰다. 마지막으로 노트북을 꺼냈을 때 재성의 입에 

 

선 낮은 욕짓거리가 튀어 나왔다. 노트북은 중간 연결부분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망가져 있었는데, 한여름 

 

혓바닥을 길게 내민 개새끼 마냥 시디롬을 길게 내밀고 있었다. 넣어도 넣어도 시디롬은 용수철 처럼 다시 

 

튀어나왔다. 전원을 눌러보았지만 예상대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작업실을 빠져 나올 때 가방을 던진 것 

 

이 생각났다. 안전하게 감싸든가 아니면 직접 매고 내려 왔어야했다. 소설을 쓰려면 노트북이 있어야 한 

 

다. 그 안에 모든 파일이 저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내부 하드는 안전할 것이다. 대리점에 맡기면 무사 

 

히 복구할 수 있다. 헌데 시간이 없었다. 복구하는데 한달 정도는 우습게 지나가 버릴 것이다. 신경질이 머 

 

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저녁에 편의점에 들러 밑반찬 몇 가지를 샀다. 맛을 모르므로 값싸고 양 많은 반찬을 위주로 구매했다. 2층 

 

으로 올라왔지만 총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얄밉게 생긴 총무의 얼굴에 괜스레 화가 났다. 비밀 

 

번호를 누르려다 문득 담배 생각이 났다. 코가 막히면서 담배 맛 역시 떨어져 버렸지만, 연기를 폐까지 들 

 

이마시는 느낌이 좋았다. 아마도 폐가 담배맛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리라. 3층으로 올라서자 쓰레기봉지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재활용품부터 해서 잡다한 생활 쓰레기들이 3층을 가득 채우고 메웠다. 3층의 안쪽 역 

 

시 셔터로 굳게 닫힌 상태였는데 한쪽 구석이 찌그러진 채 흉물스런 모습이었다. 다시 한층을 더 올라가자 

 

마침내 옥상이 나타났다. 옥상에는 에어컨 기기 몇 대와 빨랫줄이 길게 널려 있었고, 입구에 놓인 낡은 파 

 

라솔 주위로 담배꽁초가 무수히 널려 있었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면서 옥상 끝으로 걸어갔다. 빨랫줄 너 

 

머에서 누군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보였다. 인사라도 할 겸 재성이 그곳으로 다가갔다. 

 

"안녕 하세요" 

 

재성의 인사에 담배를 태우던 남자가 고개를 돌린다. 자그마한 키에 무표정한 얼굴. 40대로 보이는 남자는 

 

낮에 창문을 엿보던 그 사람이었다. 

 

"......" 

 

남자는 대꾸도 않은 채 조용히 재성을 바라본다. 회사에서 퇴근한 듯 작업복을 입은 모습이다. 남자가 반 

 

도 더 남은 담배를 조용히 비벼 끄곤 재성을 지나쳐 간다. 남자가 지나치면서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를 낸 

 

다. 

 

"미친놈" 

 

재성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남자는 계단을 통해 내려가 버렸고 재성만이 홀로 남았다. 

 

'인사를 했는데 욕설을 한다?' 

 

문득 총무의 무례한 말투가 떠올랐다. 이 고시원에는 정상적인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귀신같은 목소리를 

 

내던 청년이 떠올랐고, 알몸으로 엎드려 있던 여자가 떠올랐다. 모두가 이상했다. 늘 접하던 부류의 사람들 

 

이 아니었다. 쓰게 한 번 웃고는 재성이 옥상을 내려왔다. 총무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고, 카운터 안에는 티 

 

비만이 홀로 켜져 있었다. 

 

"삑삑삑삑" 

 

비밀번호를 누르자 맑은 쇳소리를 내며 걸쇠가 열렸다. 문을 열자 뒤죽박죽 섞인 신발들이 재성을 반긴다. 

 

발을 뻗어 그것들을 한쪽으로 쓸어버렸다. 발길질 한번에 신발들이 더욱 고루 섞인다. 새로 생긴 공간에 자 

 

신의 운동화를 가지런히 정리하고선 복도로 올라섰다. 

 

"철커덕" 

 

다시금 걸쇠가 채워지면서 쇳소리가 울렸다. 손가락 크기의 수쇠가 구멍속으로 들어가면서 기분좋은 금속 

 

의 마찰음이 터졌다. 반찬 봉지를 들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컴컴한 복도를 가로지르자 알 수 없는 긴장 

 

감이 생겨났다. 

 

'설마..' 

 

분명 실수였을 것이다. 중앙 복도에 들어섰을 땐 묘한 기대감으로 마른침을 연신 삼켜댔다. 

 

'열려있다!' 

 

창문은 여전히 열린 상태였고, 안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꿀꺽" 

 

조심스레 창문으로 다가갔다. 이번에도 지나치면서 슬쩍 들여다 볼 참이었다. 재성이 무심한 표정으로 슬 

 

쩍 고개를 돌렸다. 

 

'어라..'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대는 반쯤 접힌 이불만이 놓여 있었고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모퉁이를 

 

돌아가던 재성에게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못 보고 지나친 것은 아닐까..' 

 

재성이 맞은편 복도를 빙 돌아서 다시금 중앙 복도로 들어섰다. 한 번 더 확인해 볼 속셈이었다. 천천히 걸 

 

으며 재성의 시선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돌아갔다. 

 

"스윽" 

 

'헉' 

 

하마터면 들고 있던 반찬봉지를 떨어트릴 뻔 했다. 재성이 쳐다보던 순간에 여자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 

 

던 것이다. 여자는 멍하니 재성을 바라보았는데 아까와는 달리 옷을 입은 상태였다. 창백한 얼굴에 까만 눈 

 

망울은 금방이라도 굴러 나올 듯 커다랗게 보였다. 시원한 콧날에 짙은 속눈썹의 여자는 흔히 보기 힘든 미 

 

인이었다. 여자가 자신을 계속 주시하자 재성이 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재성이 놀 

 

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간 떨어질 뻔 했네.." 

 

반찬봉지를 냉장고에 집어넣자 핸드폰이 울렸다. 폴더를 열자 아는 음성이 들린다. 

 

"오빠, 저 은미예요.. 오빠랑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런데 잠시 만날 수 있을까요?" 

 

갑작스런 은미의 말에 재성이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전화로 하면 안될까? 나 지금 만나기 곤란한데.." 

 

"바쁘시면 제가 그리로 찾아갈게요, 집으로 가면 되나요?" 

 

"아냐, 오지마.. 나 할 일이 많아서 그래. 무슨 일인데 그래? 언니랑 관련된 일이야?" 

 

잠시동안 핸드폰에서 대꾸가 없었다. 

 

"전화로는 그렇고 직접 얘기해야 될 문제예요, 어디세요? 제가 지금 갈게요"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하려던 재성이 황급히 입을 닫았다. 기묘한 이질감이 그녀에게서 느껴졌다. 

 

"미안하지만 안되겠어, 나중에 만나서 얘기하자" 

 

재성의 거절에 다시 또 침묵이 찾아온다. 

 

"알았어요, 그럼 나중에 만나요" 

 

은미와 통화를 끝낸 재성이 그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슨 일이지? 은정이와 관련된 일인가.." 

 

섣불리 판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일을 대비해서 자신의 위치는 절대로 노출되어서는 안되었다. 핸드폰 

 

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잠들어 있던 불안감이 슬슬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혹시 위치추적이라도 하면 어쩌지..아니야 그렇게까지 해서 날 찾을 이유가 없어' 

 

재성은 핸드폰의 전원을 꺼버렸다. 취재를 마칠 때까지 핸드폰을 꺼놓기로 결심했다. 동식에게는 자신이 따 

 

로 전화를 주기로 하고 핸드폰을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전원이 꺼져 있으면 위치추적이 불가능하다는 걸 재 

 

성은 알고 있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자는 것처럼 보였던 재성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머릿속을 떠도는 잡념때문이 아니었다. 

 

그까짓 잡생각쯤이야 집중하면 얼마든지 없애버릴 수 있었다. 그를 괴롭힌 건 다른 존재였다. 

 

"윙.." 

 

좁은 공간 속을 모기 한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수면의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번번이 그것 

 

이 방해했다. 귓가로 가깝게 날아드는 그것의 날개 소리는 가벼운 두통마저 자아냈다. 불을 켜고 시계를 쳐 

 

다보았다. 새벽 한시. 더러운 흡혈귀 한마리 때문에 가장 어중간한 시간에 잠이 깨버린 것이다. 이리저리 

 

시선을 돌려가며 모기를 찾았다. 재성의 살기라도 감지한 것일까. 끈질기게 날라들던 그것이 감쪽같이 사라 

 

져 버렸다. 

 

'제깟놈이 사라져 봤자지' 

 

2평 남짓한 공간에서 놈이 숨을 곳은 제한되어 있었다. 눈빛을 번뜩이며 구석구석을 살피던 찰나 마침내 그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기는 기다란 다리를 모은 채 문 손잡이에 붙어있었다. 휴지 몇 장을 거칠게 뜯고 

 

는 천천히 다가갔다. 숨도 쉬지 않고서 살금살금 손을 뻗어 갔다.바로 그때였다. 재성은 자신의 눈을 의심 

 

했다. 분명 자신이 착각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자 마침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의 손잡이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어찌나 천천히 돌아갔던지 매달린 모기가 날아가지 

 

도 않았다. 밀리미터 단위로 돌아가는 손잡이를 보자 재성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 했다. 모기가 백팔십 

 

도를 넘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까지 족히 삼분은 걸린 듯 했다. 재성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송글송 

 

글 맺혔다. 다행히 문은 잠겨 있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찰칵" 

 

가볍게 손잡이를 당기는 소리가 났다. 문은 열리지 않았지만 재성은 꼼짝도 않은 채 긴장하고 있었다. 문 

 

이 잠긴 것을 알자 돌렸던 손잡이를 풀어놓는다. 열었던 속도에 비하면 쏜살같은 빠르기였다. 누군가가 사 

 

라진 뒤에도 재성은 한동안 쥐 죽은 듯이 있었다. 문을 열면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빌어먹을 고시원 같으니라구' 

 

삼십분 가량을 잠자코 있던 재성이 마침내 욕설을 퍼부었다. 

 

"근데 도대체 누구지.." 

 

아침 일곱시가 넘어서야 재성이 방문을 열었다. 방안에 비치된 작은 소화기를 든 채 강하게 문을 밀었다. 

 

“덜컥” 

 

무언가가 세차게 문에 부딪혔다. 거의 기절할 정도로 놀란 재성이 반사적으로 소화기를 쳐들었다. 복도로 

 

나가자 넘어진 다림질대가 보였다. 갑자기 맥이 탁 풀렸다. 누군가 놓아둔 다림질대에 문이 부딪힌 것이 

 

다. 허탈감 뒤에는 화까지 치밀어 올랐다. 누군가에게 풀지 않으면 화병이 생길 것 같았다. 재성이 성큼성 

 

큼 복도를 걸었다. 중앙복도를 통과하자 예의 그 열린 창문이 나타났지만, 그것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 

 

다. 주방문을 거칠게 열었다. 총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신발을 신고 카운터로 나갔다. 

 

‘도대체 어디 간 거야’ 

 

총무는 카운터에도 없었다. 식식거리며 한참을 기다리자 아래층에서 누군가 올라왔다. 

 

“총무...” 

 

재성의 입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새로 산 담배 한 갑을 뜯고 있던 총무가 재성을 본체만체 한 

 

다. 

 

“당신, 고시원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재성의 굳은 음성에 그제야 재성을 주시한다. 

 

“뭔 소리야? 아침부터..” 

 

끝까지 반말이다. 

 

“어제 새벽에 도둑이 들어왔단 말이야” 

 

재성이 소리를 빽 질렀다. 

 

“누구한테 도둑이 들었는데? 알아듣게 설명을 해봐” 

 

총무는 재성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속으로 이를 갈면서 어젯밤 상황을 설명했다. 

 

“뭐야. 난 또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네” 

 

총무가 뱁새눈깔을 찌푸린 채 계단에 올라섰다. 재성을 지나친 뒤 옥상으로 올라가려는 눈치였다. 할 수만 

 

있다면 수십 가지의 방법으로 저놈을 고문하고 싶었다. 살려달라고 빌때까지 지옥의 고통을 안겨주고 싶었 

 

다. 3층으로 향하는 계단 중간쯤에서 총무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정 불안하거든 한순경이랑 얘기해봐, 지금 신발 신고 있네” 

 

총무의 말에 재성이 안쪽을 쳐다봤다. 문이 열리고 경찰복을 입은 남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큼직한 체 

 

구에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 바로 주방에서 만난 그 남자였다. 

 

“경찰..이셨어요?” 

 

남성은 하얀이를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일 있나요? 고함소리가 들리던데” 

 

낯간지러운 미성이 흘러 나왔다. 재성이 계단 쪽을 보자 총무는 사라져버린 후였다. 재성이 자초지정을 설 

 

명하자 남성이 말없이 경청했다. 

 

“제가 봤을 때는 누가 장난 친 것 같군요, 아니면 방을 잘못 찾았거나요” 

 

남성은 부드러운 억양으로 재성을 위로했다. 

 

“너무 걱정 말아요, 문 잘 잠그고 자면 아무일 없을 거예요” 

 

그의 말에 묘한 신뢰가 느껴진다. 사실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자신의 신경이 예민해져 있어서 객관적 

 

인 판단을 못하는 것일수도 있었다. 

 

“정재성입니다. 직업은 소설가인데 아직 내세울 작품은 없네요” 

 

재성이 진심을 담아 자신을 소개했다. 

 

“한명철 입니다. 여기 은곡 지구대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그냥 한순경으로 부르세요” 

 

한순경이 재성의 어깨를 가볍게 친 뒤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가 사라지자 재성도 안으로 들어왔다. 마음이 

 

홀가분해지자 콧노래가 흘러 나왔다. 중앙복도로 들어서자 좀전의 광경이 떠올랐다. 그녀의 창문은 분명히 

 

열려 있었다. 창문을 지나치면서 재성이 눈알을 힘껏 굴렸다. 지난번처럼 정면으로 마주치면 곤란했다. 고 

 

개는 정면에 두면서 눈알만이 창문쪽으로 쏠렸다. 맙소사, 누군가 보기라도 하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창문에 뭔가가 아른거렸지만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어찌나 세게 돌렸는지 눈알이 뻐근하다. 대체 뭘 

 

까. 재성이 볼일을 보는 척 하며 시선을 돌렸다. 창문에는 여자가 얼굴을 내민 채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 

 

었다. 

 

“네?” 

 

자신을 부르는지 알고 재성이 다가갔다. 

 

“....안 나와요” 

 

“뭐라구요?” 

 

여자가 한글자씩 또박또박 내뱉었다. 

 

“물.이.안.나.와.요” 

 

재성의 표정도 그녀처럼 멍해졌다. 

 

“물이 안 나온다구요?”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머릿속으로 야릇한 생각 하나가 스쳐갔다. 

 

“제가 잠시 봐도 될까요? 간단한 거라면 봐드릴 수 있는데” 

 

아무런 대꾸가 없다. 

 

“그럼 실례 하겠습니다” 

 

재성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방안의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별다른 장식없이 깔끔한 방이었 

 

다. 책상 한구석에 티슈와 화장품들이 보였다. 그리고 옆에는..일순 재성의 동공이 확장됐다. 그 옆에는 생 

 

리대가 있었다. 뜯지도 않은 새것이었지만 상상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그녀는 싱싱한 처녀였고 게다가 아 

 

름답기까지 했다. 매달 한 사발의 피를 쏟아내는 젊은 여성이었던 것이다. 

 

“세..세면대는 어디 있죠?” 

 

재성이 이리저리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하기사 애초에 세면대가 있을리 없었다. 

 

“물이 안나와요” 

 

여자가 한숨을 쉬듯 토해낸다. 문득 아랫도리가 뻐근해져왔다. 엉거주춤 서 있는 재성에게 그녀가 손가락 

 

을 들어 보인다. 

 

“물이 안나와요” 

 

그녀의 손가락은 정확히 사타구니 사이를 가리켰고, 재성은 한참동안이나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생각해야했 

 

다. 뒤늦게 야한 생각이 떠오르자 걷잡을 수 없이 성욕이 솟구쳤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린 페니 

 

스가 강하게 바지를 압박했다. 

 

“실..실례했습니다” 

 

재성이 황급히 방을 빠져나왔다. 어기적거리며 방으로 돌아온 재성이 침대에 주저 앉았다. 

 

“물이 안 나오다니..그게 안 나올 수도 있는 건가” 

 

재성의 경험상 그것은 불가능했다. 물이 안 나올수는 없었다. 티비에서 할례의식을 치룬 여자들을 본 적이 

 

있었다. 그녀들에게 섹스는 즐거움이 아닌 고통 자체였다. 음핵을 제거하고 나면 아무런 기쁨도 못 느끼는 

 

것이었다.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행해지는 그 의식에 매년 200만명이 넘는 어린 소녀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는 것이었다. 시술 도중 죽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녀도 할례를 한 것일까? 아니면 단순하게 맛이 간 것일 

 

수도 있었다. 그녀의 까만 동공이 떠오른다. 그건 미친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재성이 차근차근 생각을 정 

 

리해 나갔다. 그 날 저녁 해가 지자마자 재성이 어딘가로 외출을 했다. 잠시 후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엔 마 

 

사지오일이 들려 있었다.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가볍게 노크 한 뒤 얼른 문을 열었다. 방안의 불은 꺼진 상태였는데 침대위에 그녀가 엎드려 있었다. 언젠 

 

가 처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모습이었다. 창문이 있는 방이라서 그런지 완벽한 어둠은 아니었다. 바지를 

 

벗고 속옷까지 벗은 재성이 침대로 올라갔다. 

 

“오일을 사왔어요...물이 안나와도 아프지 않을 겁니다” 

 

재성의 손이 그녀의 엉덩이로 향했다. 심장은 터질것처럼 울려댔고 극도의 흥분으로 얼굴은 붉게 달아 올라 

 

있었다. 

 

‘헛’ 

 

차가웠다. 그녀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엉덩이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싸늘했다. 

 

‘옷을 벗고 있어서 그런가’ 

 

재성의 손이 사타구니 사이로 다가갔다. 그곳에 손을 갖다댄 순간 재성은 그녀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 

 

았다. 그곳에는 한줌의 수분기도 없었다. 바싹 마른 생고무를 만지는 듯 했다. 오일의 뚜껑을 열고 힘차게 

 

짜냈다. 번들거리는 유분기가 손바닥에 가득 쏟아졌다. 그녀의 생식기에 오일을 듬뿍 발랐다. 구석구석 꼼 

 

꼼하게 바르고 나자 마침내 그것이 온전한 촉감을 전해왔다. 바싹 독이 오른 자신의 그곳에도 오일을 바른 

 

뒤 천천히 엎어졌다. 질퍽한 느낌과 함께 둘의 몸이 완전히 포개졌다. 재성의 허리운동에 그녀의 몸도 들썩 

 

거렸다. 그녀의 의사가 아닌 재성의 움직임에 따라 밀려가는 것이었다. 그녀는 미동도 않은 채 계속 침묵했 

 

다. 

 

“괜찮아요?” 

 

재성이 연신 움직여대며 물었다. 아무런 대답이 없다. 

 

“정말 괜찮아요?” 

 

재성이 연거푸 묻는다. 

 

“그냥 하고 가요...” 

 

모기만한 소리로 그녀가 대답한다.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대꾸가 없다. 재성은 두 번이나 더 정상에 오 

 

른 뒤에 침대를 내려왔다. 그녀의 몸에선 어느새 온기가 돌아 있었고, 옅은 땀방울들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 

 

다. 옷을 챙겨 입은 재성이 인사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조용히 문을 연 뒤 복도로 나왔다. 후련한 배설 

 

의 쾌감에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자신의 방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린 순간 재성은 크게 놀랐다. 

 

창문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누가 봤을까? 아니야 못 봤을거야’ 

 

재성이 생각을 고쳐 먹었다. 

 

‘봤으면 어때 둘다 어엿한 성인인데’ 

 

재성이 방으로 왔을땐 여덟시도 안 된 초저녁이었다. 기분좋은 노곤함이 몰려왔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눕자 

 

얼마 안가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깜짝 놀란 재성이 헛바람을 터트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불을 켜고 보자 방문이 잠기지 않은 상태였다. 재 

 

빨리 손잡이의 돌기를 눌러 문을 잠갔다. 시계를 보니 겨우 12시가 넘어 있었다. 

 

‘한순경의 말에도 안심하지 못했던 것일까’ 

 

무의식적으로 불안감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자려고 누웠지만 달아난 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삼십 

 

분쯤 뒤척거리다 체념하고선 몸을 일으켰다. 책상에 앉아 펜과 종이를 펼쳤다. 취재를 나가기까진 시간이 

 

많았다. 이왕 노트북이 망가진 마당에 단편소설이라도 쓸 생각이었다. 시나리오 구상에 골몰해 있던 그때 

 

무엇인가가 조용히 움직였다. 극히 미미한 소리였지만 적막한 방안에선 결코 놓칠 수 없는 소리였다. 재성 

 

의 고개가 자동적으로 돌아갔다. 

 

방문의 손잡이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맙소사’ 

 

 

뜬눈으로 밤을 세운 뒤 아침이 되자 재성은 방을 나왔다. 마음에 걸리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고시원 건물 

 

을 빠져 나온 뒤 편의점 옆에 위치한 공중전화로 향했다. 간간히 밀려들던 꽃샘추위마저 사라져버린 완연 

 

한 봄이었다. 따스한 봄날씨를 다들 반겼지만 재성은 반대였다. 꽃가루나 황사 따위가 날리는 봄보다는 겨 

 

울이 훨씬 좋았다. 막힌 코를 주물럭거리며 전화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동전을 넣고 번호를 누르자 익숙한 

 

컬러링이 흘러나온다. 

 

"여보세요" 

 

"저예요, 편집장님" 

 

"정작가? 안 그래도 전화하려던 참이었어, 지금 상주에 있는거 맞지?" 

 

"네, 그저께 왔어요" 

 

"빨리도 갔네. 근데 이건 누구 전화야? 못보던 번호인데" 

 

"공중전화예요.. 사정이 있어서 당분간 핸드폰을 못써요" 

 

"그래?" 

 

"저, 편집장님.." 

 

"응?" 

 

재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찾는 전화 없었죠?" 

 

"정작가 찾는 전화? 아니 없었는데 왜? 누가 찾아올 사람 있어?" 

 

"아니예요, 혹시 누가 저 찾아도 모른다고 해주세요" 

 

"무슨 일 있는거야?" 

 

"그냥 그렇게만 대답해 주면 돼요,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요" 

 

수화기를 내려놓은 재성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싶어 동식에게 전화했지만 예상했던 바였다. 은미 

 

의 전화를 받고나서 불안했었는데, 기우인 듯 싶었다. 하기사 은미가 동식의 존재를 알 리가 없었다. 동식 

 

의 존재는 은정도 몰랐다. 

 

"그럼 누구지?" 

 

고시원 계단을 올라가던 재성이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혔다. 골똘히 생각하느라 누가 내려오는지 못봤던 

 

모양이다. 재성과 부딪힌 사람이 사나운 인상을 짓는다. 남색 작업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었다. 옥상에서 재 

 

성에게 욕설을 했던 그 사람이었다. 

 

"미안합니다" 

 

"미친놈" 

 

남성이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재성을 노려보았다. 죽일듯한 기세로 쳐다보던 남성이 다시 계단을 내려가 버 

 

렸다. 

 

'혹시' 

 

짜릿한 전류 하나가 재성의 등을 관통했다. 방으로 오면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점검해 보았다. 

 

'하지만 왜?' 

 

합당한 이유가 없었다. 

 

'담배 필 때 말 건 것이 화가 났을까?' 

 

자신이 생각해 놓고도 멍청해 보였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별안간 창문을 훔쳐보던 모습이 떠올랐다. 

 

'엿보는 걸 방해했다고 느낀 걸까?' 

 

그 역시도 가능성이 희박했다. 자신은 복도를 지나갔을 뿐이었다. 만약 그 남자가 범인이라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재성은 자신이 한 행동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았다. 잠잠하던 동공이 점점 커지면서 입이 

 

떡 벌어졌다. 

 

'같이 있는 걸 봤어, 그 여자랑 관계하는 걸 훔쳐 본게 틀림없어' 

 

기분 나쁜 닭살이 우두둑 솟아올랐다. 열려 있던 창문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좋아하던 여자였을까? 아니면 단순한 질투심?' 

 

방으로 돌아온 뒤에도 재성의 고민은 계속되었다. 그 날 재성은 초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밤에도 

 

문고리가 돌아간다면 신고할 작정이었다. 깊게 잠들지 못한 재성이 피곤한 기색으로 문고리를 주시했다. 새 

 

벽 두시가 넘을 때까지 지켜보았지만 문고리는 돌아가지 않았다. 다음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인내심을 가지 

 

고 쳐다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침이 되자 담배를 꺼내 물고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 

 

상에서는 한순경이 추리닝 차림으로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웬 줄넘기세요?" 

 

"아..네..하아..근무 마치고..하아..운동하는 거예요" 

 

한순경은 오분 정도를 더 뛴 뒤에야 줄넘기를 내려 놓았다. 

 

"물어볼게 있는데요" 

 

목에 걸린 수건으로 땀을 닦던 한순경이 재성을 쳐다보았다. 

 

"고시원 사람 중에 키작은 아저씨 있잖아요..." 

 

"키작은 아저씨요?" 

 

한순경이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왜 그 작업복 입고 다니는 사람 있잖아요" 

 

"아! 김근치 그 사람 말하는구나, 근데 그건 왜요?" 

 

"이름이 김근치 인가요?" 

 

"네, 본명이예요" 

 

"사실...그 사람이 좀 수상해요" 

 

재성이 그 남자와 있었던 일은 상세히 털어놓았다. 물론 여자에 대한 얘기는 슬쩍 건너뛰었다. 얘기를 듣 

 

던 한순경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흐음" 

 

한순경이 주위를 두리번 거린 뒤 재성에게 낮게 속삭였다. 

 

"김근치 그 사람 전과자예요" 

 

"전과자요?" 

 

"네, 두명을 토막내고 개사료로 던져준 놈이죠" 

 

"그럴수가.." 

 

재성의 눈이 크게 떠졌다. 

 

"20년 꼬박 채우고 작년에 출소했어요, 지금은 공장에 다니는데 아무튼 위험한 놈이예요" 

 

뜻밖의 사실은 재성을 혼란으로 몰아갔다. 재성이 두려운 표정을 짓자 한순경이 어깨를 두드렸다. 

 

"그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 외부사람 소행일 수도 있구요" 

 

멍하니 서있는 재성에게 한순경이 다가갔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그의 입이 재성의 귓가로 향했다. 

 

"총무있죠? 그 사람도 정상인은 아니예요" 

 

"총무가요?" 

 

한순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과 8범인데 중학생 때부터 소년원에 들락거렸어요" 

 

"그렇게나 많이요?" 

 

"전과8범이긴 한데 사실 잡범이죠... 소매치기나 공갈친 것들이 대부분이예요" 

 

총무의 뱁새 눈깔이 떠올랐다. 

 

"제가 여기있는 이유도 사실 그거 때문이예요" 

 

재성이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으로 한순경을 쳐다봤다. 

 

"제가 있음으로 해서 그들을 억제시키고 있는겁니다." 

 

"아..그렇군요" 

 

"무슨 얘기들을 그렇게 하시나" 

 

별안간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무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저..그게.." 

 

눈에 띄게 당황한 재성이 말을 더듬거렸다. 수상쩍다는 표정을 지으며 총무가 바싹 다가섰다. 

 

"어흠..쿨럭..쿨럭" 

 

한순경이 요란한 기침소리를 내며 자리를 떴다. 옥상을 내려가는 그를 보며 총무가 뱁새 눈깔을 더욱 가늘 

 

게 떴다. 

 

"아무 것도 아니예요, 밥통에 밥 있죠?" 

 

재성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총무와 떨어졌다.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끈적한 시선이 그의 등에 쏟아졌다. 계 

 

단을 내려오면서 한가지 계획이 떠올랐다. 한순경은 외부인의 소행일수도 있다고 했지만 가정에 불과했다. 

 

이틀동안 조용하긴 했지만 한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밤 10시가 되자 재성이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주방 

 

을 지나 현관문까지 간 재성이 주위를 찬찬히 살폈다. 아무도 없는걸 확인하자 준비한 테이프를 꺼냈다. 미 

 

리 잘라놓은 스카치 테이프를 문에다 꼼꼼하게 부착시켰다. 문에서 벽까지 길게 붙이고 나서 다시 한번 주 

 

위를 살폈다. 방으로 돌아온 뒤 문을 잠갔다. 깍지를 낀 채 고개를 숙이자 긴장감이 몰려들었다. 트릭은 완 

 

벽했다. 만약 오늘 문고리가 돌아간다면 그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것이다. 재성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문고 

 

리에 쏟아졌다. 새벽 한시가 넘자 피곤이 몰려들었다. 뻑뻑한 눈을 억지로 벌리고서 잠을 이겨냈다. 

 

"슥" 

 

막 하품을 하던 재성의 눈에 미세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옳거니' 

 

찔끔 흘러내린 눈물을 닦고 나서 한곳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드륵" 

 

문고리가 돌아가고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재성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던 재성이 

 

다섯시가 되자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서늘한 살기가 몰아 

 

치는 듯 했다. 뒷꿈치를 들고서 천천히 현관으로 향했다. 주변을 힐끔거린 뒤에 얼굴을 문에 가져갔다. 테 

 

이프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자신이 붙여놓은 상태 그대로였다. 

 

 

'범인은 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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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게시글/댓글 삭제요청방법 리자 18.12.13.23:14 186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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