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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미스테리
마녀
공게담당
2018.02.01 23:59:39
조회 수: 244
얼마 전, 우리 마을에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성폭행 및 토막살인.
목격자는 50대 남성으로, 밭을 갈다가 정신을 조금 놓았는지 땅을 조금 파게 되었는데,
그 곳에 20살 전후로 보이는 여성이 토막토막 절단된 채로 있었다고 증언했다.
모처럼의 휴가를 받아 고향에 내려온 나로서는, 커다란 사건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방구석에 틀어박힌 채로 TV에서 틀어주는 '사건의 경과' 따위를 계속 확인하거나 했었다.
사건 발생 후 3일째. 어느 때처럼 TV를 보고있던 나의 방에, 갑작스럽게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무슨 일이냐고 말하기도 전에, '성폭행 및 살인 죄'로 나를 체포해간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성폭행은 커녕 여자 손 한 번 제대로 잡아본 적도 없었기에 경찰들에게 저항했지만,
성인 남성 혼자서 훈련된 경찰관 대여섯명을 이겨내는 일은 영화에나 나올법한 일인지라
경찰서에 끌려가게 되었다.
저항을 했으면 안 됐던 걸까? 경찰들은 범인이 아니라고 호소하는 나를 향해 싸늘한 시선을 날리기만 했다.
나는 그대로 끌려가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어둡고 깜깜한 구치소.
할 일도 없는지라 마침 있던 TV를 틀어 뉴스를 보니, 나는 이미 살인자로 판명이라도 난 듯
온갖 기사가 나오고만 있었다.
언제나 따스했던 고향 사람들은 날더러 '평소에도 어딘가 음침한 구석이 있었다'며 욕했고,
피해자의 가족들은 나를 죽일듯이 원망했으며, 인터넷에서는 나를 대상으로 한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의)
욕설이 섞인 댓글이 많은 추천 수를 받았다. 익명의 사람들은 나를 앞다투어 욕하고 있었다.
재판 날. 법원에 내가 들어서자마자 배심원들은 나에게 악취담긴 야유를 내뿜는다.
뭐, 하지만 나는 살인 같은 건 정말로 하지 않았기에 법은 나의 손을 들어줄 것이고, 그
러면 이 야유도 사그라 질 것이다.
나중에 TV프로에서 '그런 일도 있었죠~' 하며 즐겁게
(뭐, 살인사건을 다룬 추억이니 즐겁다고 할 수만은 없기도 하다만) 회상할 수 있는,
그런 흔해빠진 추억으로 사그라들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법원에서의 판결은 무기징역. 선고가 나기 전 배심원들은 '사형, 사형!' 을 외쳐댔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판사도 배심원들의 눈치를 꽤나 보았던 것 같다.
나는 당연히 결과에 불복하고 재심을 신청하였다.
TV속 세상에서는 야유가 더욱 더 거세졌다.
두 번째 재판 날. 첫 재판 이 후로 3달이나 지나서 그럴까, 배심원들은 정말로
이 사건에 관심이 있는 몇몇 사람들만 모인 것 같았다.
딱 보기에도 (첫 재판과 달리) 초라해 보이는 배심원석이 불안하게만 느껴졌다.
뭐, 그런 걱정과는 달리 나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선고 되었다.
배심원들도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나는 '추악한 성폭행 살인자' 라는 누명을 벗었다.
나는 재판이 끝나고 곧장 고향으로 내려갔다. 다니고 있던 회사는 자리를 비웠으니만큼
자리가 남아있지는 않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고향 사람들은 날 보며 수군대거나 뒷통수에 돌을 던지며 낄낄대거나 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뭐라든 나는 무죄니까. 선량한 시민이니까.
집에 도착했을 때, 집은 텅 비어있었다.
부모님이 외출 하신거라 생각한 나는, 차갑게 식어버린 내 방에 이불을 깔고 누워
TV를 켠 채로 부모님을 기다렸다. TV에서는 어느 채널이건 예능을 틀어줘서
기다리는 시간이 딱히 지루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로는, 아버지는 내가 경찰에 끌려가자
수치심에 집을 나가셧고, 어머니는 충격을 받아 돌아가셨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이대로 부모님을 하염없이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예전에 살던 자취방은 다행히도 그대로 있었기에, 그 곳에서 재취직 준비를 하기로 했다.
일을 조금 쉬기는 했어도 5년이라는 경력이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쉽게 취직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고,
중소기업 30곳에 서류를 넣었다. 서류 심사 결과는-
30곳 중 30곳 모두 불합격. 그리고 엄청난 욕과 협박이 들어있는 편지가 10장 정도 날아왔다.
망연자실한 나는 어둑어둑해진 밤길을 걸었다. 산책을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즐길 여력도 없이,
지나다니는 취객들은 모두 나를 알아보고 살인자라며 시비를 걸어왔다.
무시하고 가려고 하면 복부에 주먹을 우겨넣고, 쓰러진 나를 향해 피우던 담배와 더러워진 신발을
섞어 비비며, '너 같은 건 좀 더 뒤져봐야 돼. 이 사회에 정의가 너는 용서 못 해.' 라는 말을 남기고
씩씩거리며 떠났다.
빗방울. 빗방울인지 눈물방울인지 모를 물방울 하나가 내 뺨을 타고 흘러내려왔다.
욱신거리는 몸을 이끌고 그 곳을 떠나려 했을 때, 문득 근처에 있는 피씨방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무엇인가에 이끌린 듯 그 곳으로 들어가 내 이름을 검색했다.
'토막살인에 성폭행' '극악무도한 범죄자'... 수두룩하게 뜨는 '살인자' 라는 나의 모습 속에,
무죄로 풀려났다는 기사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무죄였지만, 이미 '살인자' 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 날 밤, 나는 처음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죽인 상대는 나에 대한 고찰이랍시고 오만가지 욕을 적어놓은 어느 커뮤니티 사이트의 회원.
신상정보를 찾는 것은 예상 외로 간단했기에,
내가 한 일은 그저 숨어들어서 칼로 푹-하고 찍어버리는 일이었다. 사람을 죽였지만,
그 속에 죄책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느껴진 감정은 허망감과 허탈감에 가까웠다. 하하. 마음껏 욕해보라고. '
마녀사냥'? 그딴 거 당할바에는 진짜. 진짜로 마녀가 되어주지.
내가 아홉 번째 살인을 저질렀을때 쯤, 뉴스에서는 내가 일곱 번째로 살해한 사건의 '범인'을 찾았다고 한다. 인터넷 상에서는 역시나, 모두 힘을 모아 그 인간을 욕하고 있다.
자, 또 다른 마녀의 탄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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