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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평민과 천민 출신 과거 급제자들 및 경향성
  • 익명_16691
  • 2024.06.15 14:07:37
  • 조회 수: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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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미국 하원의원 토마스 젠케스는 당시 계류 중이던 공무원 개혁법에 대한 보고서에서 과거제도를 언급했다
 
그는 당시 엽관제가 만연한 미국의 공무원들을 비판하며 중국의 과거제도를 본받아 시험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과거 시험은 분명 법제적으로 신분 상승의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일면 선진적이고 개방적인 제도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실제 과거제를 통한 신분상승은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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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조선의 신분제 하면 사농공상 등을 떠올리나 이는 사회적 신분으로, 법적으로는 양인과 천인으로 구분되는 양천제였다
 
따라서 반역자 집안 등의 특이사항이 없다면 일반 평민도 과거 응시 및 급제가 가능했고 천민 또한 양인이 된다면 마찬가지로 가능했다
 
다만 이들 중 공부에 많은 시간이 드는 문과 합격자는 매우 드물었고 합격자 대부분이 무과 및 잡과 응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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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부는 과거 급제자들에 대해 일종의 합격자 명부인 <방목>을 만들었다
 
무과방목에는 기본적으로 해당 시험에 대한 정보를 적고, 그다음에 성적 순서로 급제자 명단을 기록하였다
 
급제자와 관련한 기재 사항은 우선 급제자의 순위를 적고, 직역과 이름, 나이, 본관, 거주지, 아버지의 직역과 이름, 생존 여부, 형제 관계 등의 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중 급제자의 인적사항 부분을 분석하면 이전 신분을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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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자 전원의 기록이 현존하는 문과방목과 다르게 무과방목은 총 801회의 시험 중 138회분만이 남아 있고 그나마도 17-18세기에 집중되어 있다
 
다행히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무과방목을 비롯한 각종 사료들의 DB화를 추진하고 있어 이를 활용하면 남아있는 기록이나마 결과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우선 천민 출신 급제자를 찾기 위해 '면천' 키워드를 넣고 조회한 결과 565건이 검색되었지만 병자호란 직후 치뤄진 한 차례의 시험에서만 기록이 나온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름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당시 평민 중에는 순우리말을 이름으로 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들이 과거에 급제할 경우 방목에는 한문으로 기록해야 했는데, 이 경우 이름들을 이두(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던 표기법)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김돌덩이”를 한자로 “金乭屎”처럼 표기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는 “김돌덩이(金乭屎)”의 글자 수를 세면 괄호를 포함하여 전체 8자가 넘는다
 
따라서 급제자의 이름이 8자를 초과하는 경우를 조회하면 다음의 결과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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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보면 추정할 수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존재한다
 
우선 평민들은 국가 위기 시에 급히 치러진 비정기 시험을 통해 많이 급제하였다
 
둘째, 이들이 평민일지라도 그 전력을 보면 포수, 군관 등 이미 군과 관련된 직역에 종사하며 재응시를 한 경우가 많았다
 
셋째, 이러한 경향은 주로 조선 중기 이후에 나타난다
 
넷째, 급제하였다 하더라도 거의 하위 등수로 급제하였다


 
당초 평민 출신 급제자가 증가한 것은 국난 타개 및 신분제의 압력 해소를 위해서였으나 신분제의 근간을 흔들지 않고 기존 사회를 유지하려는 의도 또한 공존하고 있었다
 
조선시대 동안 문과 합격자 수는 약 15000명이지만 무과 합격자 수는 13만명으로 추정되고 그 대부분은 조선 후기에 급증한 합격자들이었다
 
중앙 권력의 핵심인 문과보다 다소 낮게 대우받는 무과의 길을 넓혀 준 것은 나름의 타협점인 셈이다
 
그러나 급증한 무과 급제자들의 적체 속에서 한정된 승진 기회를 잡는 것은 결국 기존 지배층과 연관된 이들이 많았다
 
이처럼 비양반 출신 과거 급제자들의 한계는 존재했으나 피지배층의 '개천용' 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고, 장기적으로 대를 이어 합격한다면 지배층으로의 편입 가능성도 작게나마 존재했다

 

 
이를 보면 과거제도란 시대를 앞서간 공정과 개방을 표방한 관료 선발 시험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론 시대의 한계로 차별과 폐쇄성이 상존해있는 양날의 칼과 같은 시험이었다고 볼 수 있다







 
양창진. (2016). DB를 활용한 과거급제자 분석 사례 연구 ― 조선조 무과 급제자를 중심으로. 동양고전연구, 64, 221-250.
 
정해은. (2012). 조선후기 무과급제자의 진로에 나타난 차별의 문제 - 1784년(정조 8) 책봉경과를 중심으로 -. 한국문화, 58, 39-64.
 
정해은. (1999). 병자호란기 군공 면천인의 무과 급제와 신분 변화 - 『 정축정시문무과방목 』 ( 1637 년 ) 을 중심으로 -. 조선시대사학보, 9(0), 7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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